[사설]朴대통령의 ‘시한부’ 예고, 李총리는 거취 정리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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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오후 중남미 4개국 순방 출발시간을 늦추면서까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약 40분간 전격 회동했다. 김 대표로부터 ‘성완종 파문’과 관련해 당 내외의 의견을 들은 뒤 박 대통령은 “잘 알겠다. 다녀와서 결정하겠다”라고 답해 이완구 총리를 ‘시한부’로 둔다는 점을 시사했다. 박 대통령은 또 “의혹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는 길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검토할 용의가 있다”면서 “특검을 도입하는 것이 진실 규명에 도움이 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통상 대통령이 해외 순방에 나설 때는 총리를 만나 국정을 당부하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총리 대신 여당 대표를 불러 독대했다.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이완구 총리는 3000만 원 수수 의혹에다 오락가락하는 해명으로 이미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여당 내에서도 사퇴를 촉구하는 소리가 나오고 야당은 해임건의안은 물론이고 탄핵까지 거론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진도 팽목항에서 목도한 ‘세월호 민심’은 몹시 싸늘했다. 희생자·실종자 가족들이 분향소를 막아 분향조차 하지 못했다. 어떤 식으로든 현 상황에 대한 나름의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는 발걸음을 떼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김 대표와 독대한 모양새로 보나, 발언 내용으로 보나 박 대통령의 마음속에서는 이 총리의 거취에 대해 결심이 섰다고 봐야 할 것이다. 대통령 발언이 귀국 후 여론의 추이를 보면서 이 총리의 거취에 대한 용단을 내리겠다는 의미로 들리는 이유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후임 총리를 물색한다는 얘기까지 나돈다.

이 총리는 박 대통령의 발언을 전해 듣고도 “국정을 철저히 잘하라는 그런 말씀”이라며 “총리는 대통령 외유 중 국정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챙겨야 할 책무가 있다”는 말로 자진 사퇴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참으로 불행하고도 코미디 같은 상황이다. 대통령은 나라를 비우고, 대신 국정을 책임져야 할 총리는 대통령과 국민의 마음에서 이미 절반 이상 지워져 사실상 ‘시한부 총리’ 신세인데도 정작 본인만 모르는 것 같다.

대통령이 귀국하는 27일까지 국내에 아무 일 없기만을 바라며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총리를 지켜봐야 하는 국민도 참 기구하다. 이쯤 되면 이 총리 스스로 거취를 정리하는 것이 옳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뒤 정홍원 당시 총리가 사퇴 의사를 밝혔는데도 후임 총리 후보가 잇따라 낙마하는 바람에 두 달이나 ‘시한부’로 방치했던 일을 반복하지 말기 바란다.

박 대통령이 특검 도입을 시사한 것은 이번 일을 계기로 부정부패를 근절하겠다는 단호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우리는 본다. 전현직 대통령비서실장과 정권의 핵심 인사들이 불법 대선자금 의혹에 휩싸인 상황을 대통령은 엄중히 여겨야 한다. 검찰에 대한 신뢰도 떨어져 어떤 수사 결과를 내놔도 국민이 믿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차라리 특검을 통해 진상을 규명하고, 검은돈과 권력의 공생이 드러날 경우 그가 누구든 엄벌하는 것이 정국 수습의 지름길일 수 있다. 성완종 파문으로 드러난 적폐 때문에 공무원연금 개혁을 비롯한 중요한 국정 과제들이 뒷전으로 밀려나선 안 될 일이다.
#이완구#성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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