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악덕 사기기업 모뉴엘의 뇌물 로비에 줄줄 샌 무역금융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6일 00시 00분


코멘트
검찰의 가전업체 모뉴엘 대출사기 및 금융권 로비사건 수사로 부실하기 짝이 없는 무역금융의 실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서울중앙지검은 2007년 10월부터 7년간 총 3조4000억 원 규모의 사기대출을 받고 그 과정에서 한국무역보험공사 한국수출입은행 등에 금품 로비를 한 박홍석 대표 등 모뉴엘 전현직 임직원 4명을 기소했다. 무역금융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뇌물이나 향응을 받은 조계륭 전 사장 등 무역보험공사 전현직 간부 6명, 수출입은행 전 비서실장, 국세청 과장급 등 10명도 사법처리했다.

모뉴엘을 유명하게 만든 ‘중견기업 성공신화’ 자체가 거짓이었다. 박 대표는 컴퓨터 가격을 최대 100배까지 부풀려 수출한 것처럼 속인 뒤 수출대금 채권을 금융기관에 매각해 거액의 대출을 받아 빼돌렸다. 선적도 하지 않은 물건을 대상으로 가짜 선하(船荷)증권을 발급해 은행에 제시했고 분식회계도 서슴지 않았다. 모뉴엘은 ‘연매출 1조 원 돌파’ 등 거짓말을 만들어 언론에 알렸다. 모뉴엘이 파산하면서 미상환 대출액 5500억 원은 고스란히 금융기관 손실로 넘어갔다.

무역보험공사 수출입은행 등 무역금융을 취급하는 공기업 일부 간부의 부패는 악취가 진동한다. 모뉴엘은 이 기관들의 임직원에게 총 8억 원의 로비자금을 뿌렸다. 로비 수법도 1회 3000만∼5000만 원의 현금 제공, 1회 500만∼1000만 원의 기프트카드 제공, 법인카드 제공, 가족명의 계좌 송금 등 다양하다. 고급 유흥업소에서 한 번에 1200만 원가량의 ‘초특급 향응’을 받은 이들도 있다. 기업의 해외 수출을 돕는 무역금융제도가 악덕 기업인과 부패한 공공기관 간부의 유착으로 사기 행각에 악용된 것은 심각한 문제다. 무역 관련 공기업 임직원의 윤리의식 제고와 함께 무역보험제도의 보증한도 심사기준 강화가 시급하다.

무역금융을 비롯한 정책금융은 불가피한 면이 있지만 옥석(玉石)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면 부패와 비효율을 낳을 위험성이 크다. 이번 모뉴엘 사기 대출이나 김대중 정부 시절 벤처 바람 속에 발생한 ‘진승현 게이트’ ‘이용호 게이트’ 같은 사건이 모두 정책금융을 악용한 범죄였다. 박근혜 정부는 올해 신(新)성장산업에 100조 원 등 총 180조 원 규모의 정책금융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나랏돈이 부패사슬의 먹잇감이 되지 않도록 감시 감독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