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삼성-한화 ‘빅딜’ 재계 구조개혁 신호탄 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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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이 삼성테크윈 삼성탈레스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 등 방위사업 및 정유화학 부문 4개 계열사를 한화그룹에 1조9000억 원에 매각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최대 규모의 기업 인수합병(M&A)으로 정부의 개입 없이 기업들끼리 자발적으로 이뤄진 점에서 주목된다. 한화그룹은 방위사업과 석유화학사업에서 매출 1위로 도약하는 ‘규모의 경제’를 통해 사업을 키우게 됐고, 삼성그룹은 경영 승계를 앞두고 전자 소재 의료기기 등 핵심 사업에 주력할 수 있게 됐다.

그룹 총수의 구속으로 한때 어려운 경영 환경을 맞았던 한화는 김승연 회장의 결단으로 석유화학과 방위사업에 집중하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새로 짰다. 삼성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 부재(不在)에다 주력 산업인 전자 분야가 수익성 악화를 겪는 가운데 후계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버릴 것은 버리는’ 결정으로 핵심 역량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외환위기 직후에는 대기업들이 김대중 정부의 강권에 못 이겨 울며 겨자 먹기로 ‘빅딜’을 해야 했다. 당시 LG반도체를 현대전자에 넘겼던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지금까지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참석하지 않을 정도로 후유증이 컸다. 이명박 정부에서 문어발식 사업 확장에 나섰던 포스코와 KT는 ‘수익성 악화’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렀다. 잘못된 경영 판단에 따른 시장의 심판이 얼마나 냉정한지 실감할 수 있다.

이번 거래에서 누가 더 이익을 얻었는지 손익계산서를 따지기에는 아직 이르다. 한화가 1조9000억 원 투입이라는 재무적 부담을 안고 석유화학과 방위사업에 집중해 성공할 수 있을지, 삼성이 비주력 부문을 떼어내 전자 분야에서 초일류 기업의 자리를 굳건히 지킬 수 있을지는 인수합병의 효과를 얼마나 극대화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기업들은 글로벌 1위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여 있다. 삼성과 한화 간의 자율적인 인수합병은 다른 기업들의 성장 전략에도 충격파를 던질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글로벌 대기업의 경영 능력을 시험받는 무대에 올랐다. 한화는 2008년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중도금을 못내 계약금 3150억 원을 날린 아픈 기억이 있다. 두 기업엔 2차 구조조정을 병행하는 일이 필요할 수도 있다. 세계 시장이라는 적자생존의 정글에서 살아남으려면 재벌도 예외가 아님을 두 그룹은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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