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프랑스 좌파 정권도 보편적 복지 포기하는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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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가 70년 만에 가족수당을 줄이기로 한 것은 ‘재원이 없으면 정부 지출을 줄여야 한다’는 당연한 원칙을 새삼 확인해준다. 프랑스 정부는 지금까지 가계 소득과 관계없이 자녀가 2명이면 월 129유로(약 17만6000원), 3명이면 295유로를 주던 가족수당(아동수당)을 내년부터 소득에 따라 차등 지급하기로 했다. 좌파 사회당 소속인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이 프랑스의 대표적인 ‘보편적 복지’에 손을 대겠다는 것이어서 유럽 전체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프랑스 정부가 복지에 칼을 댄 것은 재정적자 때문이다. 내년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4.3%로 예상돼 유럽연합(EU)의 재정기준(3% 이내)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올랑드 정부는 2015년부터 3년간 공공부문 지출을 500억 유로(약 67조 원) 줄이기로 했다. 반세기 만에 최대 규모의 복지 구조조정이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늦게 무상복지 대열에 합류했지만 벌써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2012년 도입된 누리과정을 놓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사이에 갈등이 심하다. 누리과정은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다니는 3∼5세 영유아들에게 부모 소득에 관계없이 월 22만 원을 주는 제도로 사실상 프랑스의 가족수당과 비슷하다. 그런데 시도교육청은 “예산이 부족하니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정부는 “시도교육청이 책임져야 한다”며 떠넘기기에 바쁘다.

돈이 있는 집이나 없는 집이나 똑같이 복지 혜택을 주는 바람에 실제 피해는 소외 계층 아이들에게 돌아갔다. 17개 시도교육청의 3년간 예산을 분석했더니 무상급식과 누리과정 등의 예산을 대느라 소외 계층의 학생을 위한 교육복지우선사업, 학비, 교과서, 정보화 지원 등의 예산은 2011년 1조4054억 원에서 2013년 1조3743억 원으로 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예산도 부족한 상황이다. 경기 활성화를 위한 정부지출 확대로 내년 재정적자는 GDP 대비 1%에서 2%대로 늘어난다. ‘복지 천국’인 스웨덴도 여성의 취업 여부에 따라 보육료를 차등 지급하고 있다. 영국은 빈곤층에만 영아 보육을 지원하는 등 사회민주주의가 자리잡은 유럽에서도 보편적 복지가 사라지는 추세다. 한국도 더 늦기 전에 부모의 소득에 따라 보육과 급식을 차등 지원하도록 고쳐야 한다.
#프랑스#가족수당#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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