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전태일 김상진을 생각한다

  • 입력 2001년 1월 22일 16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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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인간 정신의 궤적’이라고도 한다. 전태일과 김상진이 ‘구전(口傳)의 열사(烈士)’에서 법률상의 ‘민주화 운동 유공자’로 공인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떠올리는 대목이다. 당대의 인간이 죽음을 무릅쓰고 왜 싸웠고 무엇을 얻었는가, 당대 사람들이 무엇을 만들어 세웠고 무엇을 무너뜨렸는가, 이런 것들을 해석하고 적어 정확한 궤적을 남기는 것이 역사 기술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0년, 30년 넘은 오늘에야 공식적으로 유공(有功)을 인정하는 것은 늦은 것이긴 해도 당연한 선택이다. 전태일과 김상진 두 사람을 역사 위에 공인(公人)으로 복권(復權)시키고 소외되고 가려진 ‘70년대 정신’에 당당한 이름을 부여하며, 역사의 궤적에 편입시키는 것은 우리 살아 남은 사람들의 의무다.

그들 두 사람은 70년대 유신독재 체제하의 암울한 정치 환경과 열악한 노동 여건 속에서 이웃을 위한 이타적(利他的) 희생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대의를 표출하고 현실을 타개하는 힘을 모으기 위해 웃으면서 죽음을 택한, 그야말로 함소입지(含笑入地)의 젊은 의인들이었다.

옷가공노동자였던 전태일은 1970년 서울 청계천 피복노조 노동자들의 비참한 생활환경과 임금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스스로 몸을 불살랐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그의 외침은 생존권투쟁을 넘어선 권위주의 독재 정권에 대한 저항이기도 했다.

서울대 학생이었던 김상진은 75년 유신독재 반대 데모의 선봉에 서서 ‘합법을 가장한 유신헌법의 잔인한 폭력성과 부조리 그리고 악을 고발한다’ ‘처참한 일당 독재의 아성에 맞서자’고 외치다 할복자살했다.

너나없이 용기를 잃고 투쟁의지를 접어 버린 막막한 시대, 인권과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이웃을 위해 살신성인을 실천한 두 젊은 ‘70년대 정신’을 떠올리며 우리는 21세기 우리가 개척해야 할 역사의 정신을 생각하게 된다. 64년 미국의 존슨 대통령은 케네디 대통령의 죽음의 의미를 말하면서 ‘역사는 그저 기록이 아니다. 역사는 현재에 부피를 주고, 미래에 방향을 주고, 지도자들에게 겸손을 준다’고 했다. 케네디의 죽음의 의미를 헛되이 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전태일 김상진의 고결한 희생정신과 정의감, 미래를 꿰뚫어보는 안목을 21세기로 나아가는 우리의 저력으로 삼는 일이야말로 오늘 우리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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