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민심 너무 모른다

  • 입력 2001년 1월 5일 18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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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국민을 업신여기는 정치가 또 있는가.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의 엊그제 회담은 두 사람의 치졸한 기싸움으로 일관해 국민에게 크나큰 실망과 불안만 안겨주었다.

명색 나라의 지도자들이 국가와 국민이 처한 상황보다 정파의 이익을 좇아 고성, 험담을 나누다 헤어진 것도 모자라 이젠 연일 상대 비난에 열을 올린다. 영수회담 이후 더욱 심해진 여야의 치졸한 책임 전가, 상대방 헐뜯기 싸움은 보기에 민망하다. 도대체 국민을 어떻게 알기에 이런 모습을 보이는지 분노가 치민다. 정치가 이렇게 꽁꽁 얼어붙고서야 경제난은 어떻게 극복할 것이며, 민생은 어떻게 돌볼 것인가.

이번 영수회담 결렬 사태는 어느 한쪽의 잘잘못을 따질 만한 거리조차 못된다. 애초부터 상대의 말을 들을 생각은 않고 내 주장만 밀어붙인다는 자세였으니 합의고 뭐고가 나올 계제도 아니었다.

우선 김대통령의 현실 인식은 민심과는 너무도 거리가 멀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특히 김대통령의 ‘의원 꿔주기’에 대한 인식은 실소를 자아낸다. 그것이 “광의의 정도(正道)정치”라고 억지를 쓰고 “이제라도 한나라당이 국회법 처리에 협조하면 자민련에 간 세 의원을 데려올 수 있다”고 말했다. 본란이 지적했듯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을 물건이나 공처럼 빌려주고 되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그대로 드러낸 것 아닌가.

‘수(數)의 정치’, 힘의 정치에 집착해 이런 말이 나온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생각을 하는 한 야당과 대화, 타협하며 상생의 정치를 이끌어낸다는 것이 가능할 리 없다.

이총재의 탈법적 발상도 한심하다. 안기부의 구여권 총선자금 유입 수사를 중단하라는 요구는 그가 그토록 주장해온 ‘검찰의 정치중립화’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 아닌가. 국민세금을 특정정당의 선거자금으로 돌려쓴 비리를 덮어둬서는 안된다. 이총재는 또 원내 다수당으로서 한나라당이 취한 행동이 소수여당을 극한으로 몰고간 책임에도 인색했다.

잘못된 모든 책임을 상대에게 돌리는 ‘네탓 정치’의 전형을 이번 회담은 보여줬다. 바로 그 점을 이제부터 바꿔야 한다. 상대에게 마음 속에 품은 말을 다했으니 이제 내 잘못은 무엇인지 겸허하게 반성하고 국민의 앞에서 시인한 다음 새로 시작해야 한다. 먼저 ‘의원 꿔주기’ 같은 편법과 술수의 정치를 원칙과 정도, 순리의 정치로 돌려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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