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건의 오늘과 내일]‘박근혜 재판’이 성공하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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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건 사회부장
이명건 사회부장
2015년 5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가끔 청와대로 불러 조언을 구하던 70대 법조인 A 씨와 만났다. “대통령을 몇 차례 독대했다. 내가 얘기한 게 실행되는지 잘 모르겠지만 대통령이 경청은 한다.” 박 전 대통령이 그를 만난 건 2015년 초부터다. ‘불통’이 국정 난맥의 원인이라는 비판이 일자 명망 높은 A 씨와 소통을 시도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재임 당시 중용한 또 다른 원로 법조인 정홍원 전 법무연수원장(73). 2013년 2월부터 2년 동안 국무총리를 지낸 뒤 2016년 11월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돌 기념사업 추진위원장이 됐다. 그는 추진위 출범식에서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내년(2017년) 11월 14일을 축제의 장으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두 원로 법조인을 믿을 만하다고 여겨 독대하거나 중책을 맡겼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변론도 맡기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변호사 20명으로 구성된 대리인단에 두 사람은 없었다. 대리인단은 탄핵심판 내내 ‘자격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변론 전략이 있는지 모르겠다” “경박하다”는 지적이 헌재 안팎에서 끊이지 않았다. 지난달 22일 헌재 심판정에서 대리인단 김평우 변호사가 ‘내란’을 거론하며 막말 변론을 쏟아낸 직후 대리인단 이중환 변호사는 “‘각자 대리’로 이해하면 된다”고 취재진에게 밝혔다. 일관된 큰 틀의 작전 없이 ‘각개 전투’를 한다는 의미였다. 그렇게 돛대도 삿대도 없이 바람 부는 대로 흘러가다 도착한 곳이 재판관 전원 일치의 파면 결정이었다. 만약 A 씨처럼 법조계에서 인정받는 인물이 대리인단에 있었다면 그 과정이나 결과가 조금은 다르지 않았을까.

법원 핵심 관계자는 “탄핵심판을 지켜보면서 너무 창피했다. ‘말싸움’ 수준의 변론으로 헌법과 재판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며 탄식했다. 헌법에 따라 선출된 대통령을 헌법에 따라 파면할지 말지 결정하는 재판이 탄핵심판이다. 따라서 헌법과 재판에 큰 흠집이 생겼다는 지적이었다. 특히 헌법과 재판을 경시하는 풍조가 생길까 우려했다.

헌법에 기반을 둔 법치(法治)는 재판으로 완성된다. 그래서 재판 절차가 엉망이면 결론이 의심받고 법치가 흔들린다. 미국 워싱턴 연방항소법원이 공표한 법정 예절에는 ‘방청객은 부적절한 얼굴 표정을 짓거나 과장된 손동작을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있다. 하물며 변호인의 언사와 태도에는 훨씬 엄격한 제한이 가해진다.

박 전 대통령은 곧 다시 재판을 받는다. 그의 구속 여부와는 무관하다.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 검찰이 기소 방침을 굳혔기 때문이다. 재판 변론은 누가 맡게 될까. 지난주 검찰 수사 변론은 탄핵심판 대리인단에 포함됐던 변호사 9명이 맡았다. 이대로 간다면 재판 변론은 조타수 역할을 하는 좌장(座長) 없이 좌충우돌한 탄핵심판 꼴이 될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를 대선 정국의 열기는 법정에까지 침투할 것이다. 그 결과 또다시 재판 질서가 무너진다면 그 책임은 박 전 대통령이 져야 한다. 국정 농단에 버금가는 ‘법치 문란’의 오명을 쓰지 않으려면 변호인단의 격을 높여야 한다.

한 대형 로펌 대표 변호사는 “전 국민이 지켜볼 재판이다. 학생들이 법치의 무게와 가치를 깨달아야 하는 살아 있는 교육 현장이다. 제대로 된 대리인단 구성이 어렵다면 존경받는 대법관 출신 변호사에게 국선 변호를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 재판은 박 전 대통령이 법치에 기여할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이명건 사회부장 gun43@donga.com
#박근혜#헌법재판소#탄핵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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