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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식의 오늘과 내일]‘조선 왕의 녹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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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식의 오늘과 내일]‘조선 왕의 녹취’

김갑식 문화부장 입력 2017-03-07 03:00수정 2017-03-07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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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식 문화부장
“…전하께서는 조금이라도 심기가 불편하시면 말을 가리지 않고 하시는 경우가 많아 신은 항상 개탄스럽게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말씀하실 때에는 온화하고 평온하게 하시기 바랍니다.”(검토관 조상명)

“…종친을 제재한다는 것은 종친이 권세가 있을 때 하는 말이다. …내 마음이 이미 상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화가 난 것이지 어찌 다른 뜻이 있었겠는가?”(영조)

“…신하로서 감히 들을 수 없는 하교를 내리셨으니 이는 성상의 함양(涵養·능력이나 품성을 쌓거나 갖춤) 공부가 부족해서 그런 것입니다.”(김동필)

조선왕조실록 영조실록 9년 11월 7일의 기록이다. 절대권력자인 왕과 경연청에 속한 하급 관리의 대화다. 영조의 입장에서 슬그머니 감추고도 싶을 듯한 내용이다.

그러나 조선은 왕의 일거수일투족이 곧바로 드러나는 ‘기록의 국가’였다. 1997년 조선왕조실록이 세계기록유산으로 처음 등재된 데 이어 2001년 ‘승정원일기’, 2011년 ‘일성록’이 차례로 등재됐다. 한 국가의 역사 기록이 3종이나 등재된 것은 드문 사례다. 서울대 국사학과 한영우 명예교수는 “근대 이전 우리만큼 통치 자료를 철저히 남긴 나라는 없다. 가히 독보적이다”라고 평한 바 있다.

한국고전번역원이 최근 정부 지원을 받아 인공지능(AI)으로 승정원일기 번역에 나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번역에는 인공신경망번역(NMT·Neural Machine Translation) 기술이 적용된다. 지난해 이세돌 9단과의 대국으로 화제를 모았던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처럼 스스로 학습해 번역 수준을 향상시키는 딥러닝 방식이다. AI를 이용해 작업하면 향후 45년 걸릴 것으로 예상되던 번역 기간을 27년 정도 단축할 수 있다는 게 번역원 전망이다.

기록은 당대의 언어로 번역돼 그 뜻이 후세 사람들에게 전해져야 빛을 발한다. 하지만 현실은 기록의 방대함과 전문 인력의 부족 등으로 아쉬운 상황에 머물러 있다. 조선왕조실록은 완역에 이어 재번역에 들어갔지만, 승정원일기와 일성록의 번역률은 각각 20%와 38% 수준에 그치고 있다. 승정원일기와 일성록이 고전 번역 분야의 도전이자 숙원 사업으로 꼽히는 이유다.


특히 승정원일기는 지금의 대통령비서실 격인 승정원에서 그날그날의 말과 글, 동정을 기록한 것으로 최고 권력자의 곁에서 지켜본 움직임을 엿볼 수 있다. 정7품 주서(注書)가 하루 종일 임금을 수행하면서 국정 전반에 관한 왕의 명령과 보고, 신하와의 대화 등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조선 초기부터 작성됐으나 임진왜란, 이괄의 난 및 여러 화재로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인조부터 순종 때까지의 기록이다. 비록 일부가 사라졌지만 남은 기록의 글자 수는 무려 2억4300여만 자에 달한다. 중국이 자랑하는 ‘25사(史)’가 중국 전 왕조의 역사를 기록한 것인데도 총 4000만 자 정도에 불과하다.

승정원일기는 방대함뿐 아니라 생생함에서 그 가치를 더한다. 이른바 조선시대판 ‘녹취’였다. 임금과 신하가 경연에서 학문을 토론하거나 내의원에서 임금을 진료하면서 주고받는 문진(問診), 국정 현안에 대한 임금과 신하의 대화 등이 마치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전해진다.

6일 특검의 수사 결과가 발표됐지만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기록이라는 측면에서만 본다면 대한민국은 조선왕조보다 더 후진적일지도 모른다. 역사에서 가정은 무의미하다고 배웠지만 어쩔 수 없이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우리 조상들이 지닌 ‘기록의 DNA’만 제대로 살렸다면 어땠을까?” ‘왕의 공부가 부족하다는 기개를 가진 관리들이 있었다면?’

김갑식 문화부장 dunanworld@donga.com



#조선왕조실록#영조실록#승정원일기#대통령 세월호 7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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