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훈의 오늘과 내일]그래도 달려보자, 청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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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 정책사회부장
이종훈 정책사회부장
요즘 청년들을 보면 뭔가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이 스민다. 화려한 스펙에도 졸업을 미룬 대학생, 구직에 목을 맨 청년실업자들에겐 안쓰러움이 크다. 어떨 때는 부러움, 답답함이 더해진다. 넉넉하게 자랐는데 막상 사회에 뛰어들려니 먹고살기가 훨씬 힘든지 볼멘소리와 불만만 가득한 구석들이 자꾸 보이는 것이다.

나는 대학생들이 그렇게 오래 학교를 다니는지 몰랐다. 대기업 인사 쪽 지인의 말을 들으니 여대생들은 6년이 태반이다. 군에 가는 남자들은 8년 안팎에 10년까지 다니는 경우도 종종 있단다. 전공은 2개가 보통이다. 지난 1학기 전국 4년제 대학생 1만7744명이 졸업을 유예했는데 추가 학기 등록생까지 합치면 5만 명이나 된다.

더 놀라운 건 이렇게 긴 학창 시절 동안 노는 시간이 거의 없다는 거다. 새로운 경험을 위해 일부러 휴학을 하고 지구촌 곳곳을 찾아다닌다. 전공과 무관한 취미생활, 취약계층을 위한 봉사활동은 기본이다. “이 많은 걸 전부 원해서 하나”라는 의문이 들 정도다.

12일 수시 대입 원서 접수가 시작됐다. 대학에 가려면 학교생활기록부를 채우기 위해 상도 받아야 하고, 자율 동아리는 물론이고 봉사활동까지 해야 한다. “나는 이렇게 많이 준비했습니다”라고 학생부를 꾸미려면 학부모와 교사가 알고도 모른 척하는 약간의 ‘거짓말’도 필요하다. 상위권 대학에 학생을 많이 보내 본 특수목적고나 서울 강남의 교사들과 ‘비강남권’ 교사들 간 경험과 노하우에서 차이가 나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발표된 내년 예산에서 일자리 예산은 17조5000억 원으로 올해보다 10.7%나 늘었다.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를 앞두고 여야의 잠룡들이 청년실업 문제에 큰 무게를 두고 있는 것도 참 다행스럽다.

실업으로 인한 피해는 취약계층이 더 크다. 최근 논란이 된 서울시 청년수당의 경우 수혜자(2831명) 중 114명은 부양자 연봉이 7058만 원 이상인 가정 출신으로 드러났다. 부양자 연봉이 2억 원이 넘는 사람까지 있었다. 고용노동부는 돈만 주는 청년수당이 도덕적 해이를 부른다며 ‘훈련 및 구직 수당’이 포함된 정부의 취업성공 패키지를 홍보한다. 사실 서울시 청년수당은 보건복지부가 승인을 해놓고도 청와대의 반대에 갑자기 말을 바꾼 것이어서 정부가 그렇게 큰소리만 칠 것도 못 된다. 그렇지만 청년수당의 부작용이 있으면 바로 고치는 게 맞다.

나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쯤 여야의 대선 주자들과 정부 측이 한자리에 모여 청년실업 문제를 다룰 원탁토론회를 열었으면 한다. 선진국의 사회적 갈등은 결국 청년실업과 연금 문제다. 이념과 진영의 다름을 넘어 실업대책 마스터플랜이 필요한 이유다. 그러면 청년실업 해법이 대선 포퓰리즘 공약으로 악용되는 것을 좀 막을 수 있을 것 같다. 또 좌파 우파가 허구한 날 싸움질만 하는 게 아니라 청년들의 미래를 위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줄 수도 있다.

청년들은 ‘금수저 흙수저’, 특권층의 타락, 편 가르기 같은 것에 지나치게 일희일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러분보다 조금 더 살아 보니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상대적 빈부가 젊음의 가치를 넘어서지도 못한다. 그렇게 많은 세상을 경험해 놓고 ‘헬조선’을 외치기에는 준비해 온 게 너무 아깝고 짊어진 책임이 너무 크다. 귀한 것을 귀한 것으로 볼 줄 아는 지혜도 키웠으면 한다. 새로운 생명의 잎이 돋아나려면 그만큼의 고통을 밀어내야 하는 것이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편 126장 5, 6절) 힘내라, 청년들이여.

이종훈 정책사회부장 taylor55@donga.com
#청년실업자#청년실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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