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종훈]요지부동 甲들에게 告함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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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 정책사회부장
이종훈 정책사회부장
이제 새누리당은 이념과 정강정책이 완전히 다른 2개 야당의 도움 없이는 법안 하나 통과시킬 수 없는 한심한 여당이 됐다. 항상 국민의당 눈치를 봐야 하는 더불어민주당은 속 빈 강정 같은 제1야당이다. 국민의당은 꽃놀이패를 쥔 것 같지만 1, 2당과 거래를 하지 않으면 자체 생산은 불가능한, 말 그대로 3당이다. 갑질과 양당 나눠먹기에 익숙한 국회와 정부가 완전히 달라져야 할 이유다. 권력기관과 권력자들의 갑질은 태생적으로 조금 봐줘야 할 면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바뀌지 않으면 진짜 초상 치르게 될 거라고 감히 경고한다.

의원들의 갑질. 금배지들이 국정감사 기간 중 대기업 오너들을 마구잡이로 증인신청을 해놓고 뒤로는 빼주는 조건으로 자기(지역구)의 민원을 해결한다는 것은 정치권에서는 비밀도 아니다. 여야 합의가 안 됐다며 회의 시간을 늦추는 건 ‘애교’다. 국무위원들과 부처 간부들은 금쪽같은 시간에 하염없이 여의도를 방황한다. 회의가 열리면 그나마 다행이다. 안 열린다고 하늘같은 금배지들을 어떻게 하겠나. 대정부 질문이 시작되면 상당수 의원들은 자기 일을 보러 자리를 뜬다. 자랑할 건지 알 순 없지만 세계 최장 기록을 세운 야당의 필리버스터 때 몇 명의 의원이 자리를 지켰나. 민원을 안 들어주면 유관 부처의 실, 국에 ‘10년 치 자료를 제출하라’며 ‘자료폭탄’을 던진다. 자식이나 친인척의 취업 청탁도 지저분한 고질병이다. 유령 보좌관 등록이나 보좌관 월급 ‘상납’, 의원회관에 카드단말기 설치하고 책 파는 일 같은 추한 짓은 더 이상 하지 말자.

다음은 의원들의 분신인 보좌관들의 갑질. 여의도 물정에 낯선 초선 의원보다 노련한 보좌관 한 명의 영향력이 훨씬 크다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보좌관들이 수시로 부처 공무원을 의원회관으로 불러 현안 브리핑을 시키고 부적절한 청탁을 넣는 일도 없어져야 할 갑질이다. 불가피한 사정이 있으면 어쩔 수 없겠지만 가끔은 세종시 청사에 직접 내려가 공무원들의 생생한 고충을 보고 듣고, 덤으로 바람까지 쐬면 좋을 것 같다. 또 19대 국회에선 보좌관들이 상임위 소속 부처 산하 기관이나, 유관 기업 대관 담당자들을 전화로 불러 술값, 밥값을 대납시키는 뻔뻔한 일이 유독 많았다고 한다. 국회 대관 담당자들의 불만이 하늘을 찔렀다. 오죽했으면 한 고참 보좌관은 “너무 부끄러워 자정 결의라도 하자고 기자회견 하려다가 왕따 된다고 주변에서 만류해 포기했다”고 털어놨다.

진정한 갑인 관료들도 만만찮다. 때만 되면 대기업 사장단을 불러 투자 활성화를 주문하고, 정부 주요 정책과 관련해 은근슬쩍 투자를 강요한다. ‘자율’이라는 이름하에 각종 기부를 주문하는 것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중앙 부처 공무원들은 돈이 없어 회식 한 번 하기가 어렵다. 그러면 돈 좀 있는 산하 기관 서너 곳에서 특정 식당에 가 음식은 먹지 않고 여러 차례 카드만 긁고 간다. 어느 정도 돈이 모이면 그때 부처 공무원들이 함께 가서 회식을 한다. 유관 기업에 대한 갑질 하나. 기업의 대관 담당자들에게 2, 3일 전에 일방적으로 회의 개최를 통보하고 청사로 들어오라거나 특정 장소로 모이라고 한다. 기업의 일정은 안중에 없다. 나도 비슷한 업무를 맡아봐서 잘 안다. 민원인의 고통을 빨리 해결해 주고, 기업이 신나서 일하게 돕지는 못할망정 이래선 안 된다. 입으로만 규제 개혁을 외칠 게 아니라 문제 있는 규정이나 시행령 등을 선제적으로 찾아 나서 달라.

겉으로만 약자인 척하는 대기업. 생산성과 경쟁력의 하락을 놓고 언제까지 외부 탓만 할 건가. 총선 결과를 보며 대관 라인 재정비에만 정신 팔지 말고 노조와 사생결단을 내 죽기 살기로 구조조정에 나서라. 지금 기업이 살고 나라도 사는 유일한 길이다.

이종훈 정책사회부장 taylor55@donga.com
#새누리당#정강정책#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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