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황재성]‘소 잃고 난 뒤라도 외양간을 고쳐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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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성 경제부장
황재성 경제부장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수 있는 신용카드.’ 2002년 1월 국내에서 기프트카드를 처음으로 선보인 삼성카드가 내건 홍보 카피였다. 삼성은 초기에 ‘선(先)입금 후(後)사용’ 방식인 기프트카드를 ‘선사용 후결제’ 방식인 신용카드와 동일한 상품이라며 판매에 나섰다.

당시 백화점업계는 기프트카드가 자신들이 판매하는 종이 상품권과 경쟁상품이라며 백화점과 계열 할인점에서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에 삼성은 ‘기프트카드는 신용카드의 결제 프로세스가 그대로 적용되므로 신용카드’라며 ‘사용을 막는 건 관련법 위반’이라고 반발했다. 백화점업계도 물러서지 않고 ‘카드 모양을 한 상품권일 뿐이다’며 맞섰다. 이 논란은 그해 10월 국세청이 ‘기프트카드를 유가증권(상품권)으로 규정한다’고 백화점업계의 손을 들어주며 일단락됐다.

이런 백화점업계의 거센 반발에도 기프트카드는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발매 첫해에만 600억 원어치가 팔려나갔다. 시장도 성장을 거듭해 한국은행에 따르면 시장규모는 2005년 5300억 원으로 껑충 뛰었고 2008년 1조 원을 돌파한 뒤 2010년 2조4000억 원까지 커졌다.

인기 요인은 여러 가지였다. 기존 종이 상품권이 백화점 주유소 등 일부 점포에 한정돼 이용되지만 기프트카드는 신용카드 가맹점 어디에서나 사용할 수 있어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이었다. 특히 20, 30대 젊은층들은 세련된 모양에다 구겨지거나 훼손되지 않는 기프트카드에 큰 관심을 보였다.

무엇보다 인기의 중심에 무기명 기프트카드가 있었다. 익명성을 유지하면서 누군가에게 주기 쉽다는 장점이 빛을 발했다. 50만 원짜리 고액권의 인기는 고공행진을 했다. 2014년의 경우 한 해 판매된 기프트카드의 35%가 50만 원짜리였다.

그런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최근 들어 기프트카드의 기세가 크게 꺾였다. 2010년을 정점으로 지속적으로 이용액이 줄면서 2014년 7700억 원 수준까지 떨어졌다. 주 수요자인 젊은층들이 플라스틱 기프트카드보다 기프티콘 등 모바일 상품권에 눈을 돌린 게 직격탄이 됐다. 여기에 백화점과 계열 대형마트에서 사용할 수 없다는 것도 족쇄가 됐다. 한꺼번에 기프트카드 금액을 모두 쓰기 어렵다는 점도 걸림돌이 됐다. 한 번 쓰고 남은 돈에 맞춰서 사용하기가 어렵고, 잔액이 남은 채 분실했을 때 돌려받기도 쉽지 않다는 단점도 새삼 부각됐다.

여기에 보안에 취약하다는 게 결정적으로 발목을 잡았다. 기프트카드는 백화점 상품권, 문화상품권 등 시중에서 유통되는 유가증권 가운데 유일하게 보안장치가 없다. 백화점 상품권에는 위조 방지용 바코드와 부분 노출 은선이 들어있다. 문화상품권도 은박 스크래치가 있어, 이게 벗겨지면 사용에 제약이 있다.

카드업계는 기프트카드가 일회용품이고, 무기명 기프트카드는 한도가 50만 원이어서 사고가 나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 만큼 보안수준을 높일 필요가 없다고 봤다. 이 때문에 잊을 만하면 기프트카드를 대상으로 하는 사기 유통이나 불법 복제 사고가 터졌다.

문제는 이런 취약점들이 최근 전문 해커로 보이는 외국인 범죄자들에게 노출됐다는 것이다. 동아일보 취재 결과 이들이 이용한 방법은 높은 기술력을 요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더 불안하다. 신용과 신뢰를 기반으로 생존해야 하는 금융회사로서는 치명적인 상황이다. 이제라도 카드사들이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최소한 30만 원 이상 고액권에 대해선 신용카드에 준하는 보안대책을 마련하기 바란다.

황재성 경제부장 jsonhng@donga.com
#기프트카드#상품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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