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성원]朴대통령, 문지방 돌덩이들을 어쩔 것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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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논설위원
박성원 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회견에서 배석 장관들을 향해 “그게(대면보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물었을 때, 여기저기서 가슴 철렁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웃음을 띠기는 했지만 ‘대체 어떤 얘기들을 하고 다녔기에 대면보고 부족 얘기가 나오는 거냐’는 레이저 광선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각 부처 고위 공무원 인사는 해당 부처 장관이 전부 실질적 권한을 행사한다”고 했을 때는 각 부처의 출입기자들이 곳곳에서 한숨을 쉬었다. 대통령의 말이 사실이라면 부처 국·과장급 인사까지도 청와대 결재를 받기 위해 몇 달 동안 기다려야 한다던 부처 관계자들이 거짓말을 했거나, 대통령도 모르는 새 청와대 문고리 권력들이 장관들의 인사권을 가로채 주물러왔다는 얘기가 된다.

과거 정부에서 청와대 핵심 참모를 지낸 한 인사는 대통령이 바라보는 현실과 바깥에서 바라보는 현실의 괴리를 ‘임기 3년차 증후군’으로 설명했다.

“임기 반환점을 맞는 3년차에 접어들면 쏟아놓은 공약과 국정과제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 대통령은 이제 자신이 국정을 속속들이 전부 파악하고 있다고 확신하는데, 관료들은 개혁에 속도를 내지 않고 측근들의 스캔들과 집권층의 분열로 지지율이 꺾이기 시작한다.”

김대중 정권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치적에도 정현준 진승현 이용호 게이트로 집권층의 부도덕성을 드러냈다. 노무현 정권은 2005년 연이은 부동산 대책에도 치솟는 부동산값을 잡지 못하고 대(大)연정을 추진하다 지지율이 급감했다. 이명박 정권은 2010년 민간인 사찰로 드러난 영포라인 논란에 시달리고 세종시 수정안 부결 사태로 국정 동력이 꺾였다.

박근혜 정권은 정윤회 동향 청와대 문건 사건 이후 지지층의 이탈 조짐과 당청 간, 친이·친박 간 갈등 속에 3년차를 맞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2·8전당대회를 계기로 지도력 회복과 지지층 결집에 성공하고, 4·29 재·보선에서 새누리당이 3 대 0으로 전패할 경우, 박근혜 정부는 2005년 4·30 재·보선에서 23 대 0으로 참패한 후 극심한 내부 분열과 통치력 약화를 겪었던 노무현 정부의 전철을 밟지 말란 법이 없다.

3년차 증후군을 피해갈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박 대통령이 스스로를 청와대 관저에 가두고 보고서에 파묻혀 지새우는 바람에, 도와줄 의사가 있어도 소외된 우군들부터 불러 모으는 것이다. 명색이 여당 대표가 대통령과 정례회동은커녕 비서실장 면담을 요청해도 ‘정치적으로 묘한 시기여서 만나거나 전화 통화가 어렵다’며 딱지를 놓는 구조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입법부 수장이 ‘의장 공관에서 식사하며 국회와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어떻겠느냐’며 대통령 초청을 자청했는데도 대통령은 감감무소식이다. 이러니 경제 활성화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강조한들 국민 대표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겠는가.

박 대통령이 소통을 잘해왔다는 스스로의 인식부터 바꾸지 않는다면 기초연금 문제로 면담을 요청하다 ‘응답 없음’에 좌절해 셀프 사퇴한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나 대통령의 국·과장 교체 지시에 비선실세 개입 의혹을 제기한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국회 출석 지시에 항명한 김영한 전 민정수석 같은 이가 또 나타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미국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취임 2년간 아칸소 출신과 개인적 네트워크 안의 측근 위주로 국정을 운영하다 중간선거 참패 후 공화당원 출신의 딕 모리스를 비서실장으로 영입했다. 폐쇄적 측근정치에서 제도정치로 전환해 정책에 속도를 내고 재선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십상시’니 ‘팔닭회’니 하는 문지방 위의 돌덩이들을 어찌해야 하는 것인지는 자명해 보인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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