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성원]새정치聯의 진보콤플렉스는 불치병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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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논설위원
박성원 논설위원
헌법재판소는 1월 28일 ‘국회의원 선거에서 의석을 얻지 못하고, 정당 득표율이 2% 미만인 정당에 대해 등록을 취소하고 정당 명칭을 다음 선거 때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정당법 조항에 대해 위헌결정을 내렸다. 통합진보당이 헌재의 결정으로 해산되지 않았다면 내년 총선에서 설사 1% 미만의 득표에 그친다 해도 해산될 수 없었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새정치민주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과 문재인 비대위원, 안철수 전 대표 등은 줄줄이 통진당에 대한 헌재의 해산 결정을 비판하며 “선거를 통한 유권자의 판단에 맡겼어야 한다”는 식으로 말했다. 제1야당의 지도급 인사들이라면 기본적 사실관계(fact) 정도는 확인을 하고 말을 해야 하는 것 아닐까. 문 위원장은 한술 더 떠 “정당해산 결정은 선진민주주의 국가에서 전례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서독 연방헌법재판소가 1952년 사회주의제국당을, 1956년 독일공산당을 잇달아 해산시킨 사실쯤은 알고 싶지도 않았거나 알고도 용감하게 눈감아 버렸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현 지도부와 내년 2·8전당대회의 당권주자, 심지어 2012년 대선주자라는 인사들이 통진당 해산과 관련해 이처럼 앞뒤가 안 맞는 얘기를 쏟아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무엇보다 1980년대식 민주 대(對) 반민주 구도로 편을 갈라야 대중을 결집시키고 집권도 할 수 있다고 믿는 사고방식이 새정치연합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에 돌아와 당권을 잡은 친노(친노무현) 지도부는 통진당 세력과 동지의식을 공유하는 과거 운동권 출신 등이 기반이라는 내재적 한계를 안고 있다. 문 비대위원이 대선 패배 이후 출간한 책 ‘1219 끝이 시작이다’에서 ‘종북좌파가 지난 대선을 지배한 프레임이었다. 종북 프레임은 박근혜 후보의 당선에 톡톡히 기여했다’며 자신의 패배를 색깔론 탓으로 돌리는 듯한 표현을 쓴 것도 그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사람들 눈에는 ‘미국놈들하고 붙는 대(大)민족사의 결전기’ 운운하는 이석기의 강연녹취록이나 경기동부연합의 민족해방(NL) 주체사상파가 나선 통진당 총선 비례대표 경선부정, 이정희 전 통진당 대표 측의 총선 후보단일화 여론조사 조작 같은 반(反)민주적 행태쯤은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제1야당이 스스로 진보콤플렉스에 갇혀서, 진보의 탈을 쓴 대한민국 파괴 세력을 감싸는 낡은 구조가 새정치연합을 지배하고 있다는 얘기다.

몇몇 정치학자가 1945년 이후 50년간 양당제 국가와 다당제 국가의 정부 성향을 비교해 보니 양당제 국가에선 75%의 확률로 우파가 정권을 잡았다. 그래서 ‘75% 룰’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직선제 개헌 이후 한국만 따져 봐도 노무현 정부만 유일하게 진보세력이 정권을 잡았을 뿐 나머지는 좌우연합 성격의 DJP(김대중+김종필) 공동정권 아니면 우파 정부였다. 새정치연합은 노무현 후보마저도 중도나 중도보수의 지지를 얻은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를 통해 집권할 수 있었음을 잊은 모양이다.

러시아 10월혁명 당시 결정적 시기가 왔다고 판단한 레닌의 볼셰비키는 케렌스키의 합법정권을 무력으로 뒤집고 정권을 접수했다. 새정치연합이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국민의 신뢰를 얻어 집권하려는 정당이라면 이제 진보와 종북을 헷갈리는 일도, 대한민국을 흔들려는 세력의 후견인을 자처하는 것도 그만했으면 좋겠다. 새정치연합의 2·8전당대회에서는 뿌리 깊은 진보콤플렉스를 타파하고 새로운 비전과 희망을 제시하는 ‘신(新)40대 기수들’이 전면에 나섰으면 좋겠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새정연#문재인#안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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