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신연수]아모레의 뚝심, 네이버의 야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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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수 논설위원
신연수 논설위원
10여 년 전 처음 만난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회장은 ‘공부하는 경영자’라는 인상이 강했다. 고개를 15도 정도 갸웃하고 진지하게 설명하는 모습에서 기업 경영에 대한 열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한국은 화장품은 잘 만드는데 향기를 만드는 예술이 약하다. 화장품의 본고장 프랑스에 진출해 향기를 연구하고 있다” “중국에 뷰티숍을 냈다. 중국의 잠재력이 크다” 같은 얘기를 했다. 또 “명품을 만들고 싶다”고 했고 회사 경영에 도움이 되는 책을 많이 읽는 듯했다.

당시 태평양(현 아모레퍼시픽)은 그저 그런 회사 가운데 하나였다. 코리아나 한불화장품 같은 유명한 회사들이 국내에 300여 개나 있었고 공급 초과로 전망은 밝지 않았다. ‘물과 글리세린만 있으면 만들 수 있는 게 화장품’이란 유머도 돌았다. 백화점의 화장품 매장은 프랑스 랑콤과 샤넬, 일본 시세이도 같은 해외 브랜드들이 이미 점령했다.

2014년 아모레퍼시픽은 재계의 신데렐라로 떠올랐다. 중국 여성들이 받고 싶어 하는 선물 1위가 아모레 화장품이 되면서 주가는 250만 원대로 올랐다. 1990년대 초반 위기가 닥쳤을 때 증권 건설 란제리 같은 비(非)핵심 계열사들을 매각하고 화장품에 집중해 20년간 뚝심 있게 매진한 덕분이다. 당시 비슷비슷했던 화장품 회사들은 대부분 사라지거나 저가 시장에서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서 회장이 열심히 화장품을 연구하던 1999년 또 한 사람의 신데렐라가 태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삼성SDS에서 사내 벤처를 하다가 창업한 이해진 네이버 의장이다. 그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반드시 수익이 생긴다”는 ‘약장사 이론’으로 주변 사람들을 설득해 한푼 두푼 자금을 모아 인터넷 검색 회사를 차렸다. 15년 만에 네이버는 시가총액 27조 원으로 SK텔레콤 LG화학 같은 쟁쟁한 대기업들을 제쳤다. 최근 20년 안에 창업해 시총 10위 안에 든 기업은 네이버밖에 없다.

네이버 주가가 뛴 것은 일본에서 ‘국민 메신저’라 불리는 라인 덕분이다. 라인은 세계 5억 명의 가입자를 확보해 미국 페이스북의 와츠앱, 중국 텐센트의 위챗과 함께 세계 모바일 메신저 시장에서 3강(强)을 이루고 있다. 첨단 산업의 핵심 플랫폼인 모바일 시장에서 미국 중국과 겨룬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앞으로 금융 쇼핑 게임 콘텐츠 등 많은 산업이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이뤄질 것이다.

라인은 이 의장이 주도한 프로젝트다. 그는 한 강연에서 라인 뒷얘기를 털어놓았다. “한국에서 아웅다웅하기보다 해외로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정말 힘들었고 돈도 많이 썼고 심적으로 힘들었다. 하지만 실패하고 실패하고 더이상 갈 곳이 없을 때 마치 꿈처럼 성공이 찾아왔다”고. 회사 경영은 전문경영인이 하고 이 의장은 연구개발과 해외 진출에 집중한다. 첨단 기업의 창업자답게 새로운 방식으로 회사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 경제가 위태롭다는 목소리가 높다. 단기적 경기 침체를 넘어 구조적 위기다. 전자 철강 조선 석유화학 같은 한국의 주력 산업이 흔들리고 있다. 과거 미국과 일본에서 뺏어온 산업들을 이제 중국에 뺏길 처지가 됐다. 그러나 비관은 이르다. 아모레는 ‘동동구리무’를 고급 브랜드로 만들어냈다. 네이버는 무인자동차까지 만드는 글로벌 공룡 구글에 맞서 국내 검색 시장을 지켰다.

여건이 어렵다고 핑계대지 말라. 세계은행은 189개국 가운데 한국의 기업 환경이 5위라고 했다. 전통 제조업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다시 태어나고, 구글과 요즈마도 탐내는 스타트업(벤처기업)들이 같이 뛴다면 한국 산업의 미래는 어둡지 않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
#아모레퍼시픽#네이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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