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최영해]임영록과 서울대 商大의 악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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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해 논설위원
최영해 논설위원
KB금융지주 회장에서 해임된 임영록은 경기고와 서울대 사범대 국어교육과를 나왔다. 경기고-서울대 상대(KS)가 주류인 ‘모피아(재정경제부+마피아)’ 세계에서 적자(嫡子)는 아니었다. 재경부 차관보를 맡은 지 4개월 만에 KS 대표 주자 조원동(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에게 자리를 내줘야 했다. 노무현 대통령 때 재경부 2차관까지 오른 것도 당시 ‘비주류(非主流)’ 패러다임 덕을 본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스갯소리로 들리지만 서울상대(商大)에서 ‘ㅇ’자 하나 모자란 서울사대를 나온 바람에 경제 관료 시절 마음고생을 했다는 말도 있다.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 ‘4대 천왕(天王)’ 중 한 사람인 어윤대 KB금융 회장의 그늘에 가린 실권 없는 바지사장이었다. 박근혜 정부 들어 금융계 MB 인맥 청산 과정에서 기회가 왔다. 강원 영월 출생인 임영록을 강원도 실세들이 밀었다는 얘기가 있었다. 회장 인선 때 청와대 한 인사가 ‘임영록이 불가(不可)한 이유’를 장문의 보고서로 올렸다가 대통령으로부터 “인사에 왜 그리 관심이 많으냐?”며 매서운 레이저를 맞았다는 뒷담화도 있다.

박근혜 대선캠프 출신으로 정권 실세들과 끈끈한 연이 있는 정찬우 금융위원회 부위원장과 같은 서울상대에, 금융연구원 출신인 이건호 행장과는 악연이었다. 취임 초 부행장 인선을 놓고 충돌한 것은 서막이었을 뿐, 국민은행 전산시스템 교체 문제로 행장이 금융감독원에 달려가고 급기야 검찰에 고발하는 사태로 번졌다. 회장과 행장의 갈등을 봉합하려고 절에서 단합대회를 열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독배(毒杯)가 될 줄이야. “회장만 왜 독방을 쓰느냐”며 행사 도중에 판을 엎고 집으로 간 이 행장의 돌출 행동에 KB금융 경영진의 갈등을 보는 여론은 따가워졌다.

세월호 사태로 복잡한 마당에, 회사는 망가지는데도 회장과 행장이 집안싸움에 골몰했으니 권력의 눈 밖에 났을 법도 하다. 그러나 금감원과 검찰이 샅샅이 뒤져도 뒷돈을 챙긴 사람은 없었다니 권력형 부패는 아닌 듯하다. KB금융 사태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서울상대 동문이라는 점은 흥미롭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서울대 경제학과 77학번, 이 행장은 경영학과 77학번, 정찬우 부위원장은 경제학과 82학번이다. 임영록의 자진 사퇴를 압박한 신제윤의 메신저도 서울상대 출신 모피아들이었다. 신제윤이 중징계를 내린 이유로 ‘CEO(최고경영자) 리스크’를 들이댔지만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 같은 소리다. 신제윤이 선배 모피아를 제 손으로 내칠 만큼 모진 경제 관료도 아니다.

임영록은 행장을 포용하는 리더십을 보이지 못했다. “나는 억울하다”고만 호소했을 뿐 명예롭게 물러날 타이밍을 놓쳤다. 국회의원 출판기념회에 얼굴을 내밀지 않고 실세의 인사 청탁도 잘랐다니 정치 감각이 없든가, 배짱이 두둑하든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가 ‘경륜과 덕망을 갖춘’ 훌륭한 리더였느냐는 문제와 별개로 중도에 밀어낼 만큼 중죄(重罪)를 저질렀는지 궁금하다. KB금융 사외이사인 김영진 서울대 교수(경영학)는 “시험을 쳐서 담임선생이 80점을 줬는데 교감이 60점으로 내렸다가 교장이 다시 40점으로 낮춰 과락(科落)시켜 학생을 퇴학시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관치금융을 꼬집었다.

임영록과 이건호는 물러났지만 경징계와 중징계 사이를 오락가락한 금융위, 금감원의 책임은 가볍지 않다. 경제 관료들이 뚝딱 만든 금융지주회사법의 적폐는 놔두고 회장에게 도의적 책임만 물은 면피 행정은 아니었나. 또 다른 낙하산을 보내기 위해 임영록을 잘랐다는 항간의 소문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나는 쫓겨난 임영록의 죄목(罪目)이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최영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
#임영록#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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