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최영훈]육영수 따라하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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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논설위원
최영훈 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은 존경하는 사람으로 ‘부모님, 엘리자베스1세, 마거릿 대처’를 꼽은 바 있다. 자신의 부모님을 존경하는 사람의 맨 앞에 내세우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대한민국 산업화의 기틀을 닦은 박정희 대통령이나 자애(慈愛)의 상징처럼 인식되는 육영수 여사가 부모라면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박 대통령은 어머니의 퍼스트레이디 역할과 아버지의 대통령 역할을 차례로 이어받았다. 퍼스트레이디 역할은 육 여사가 서거한 1974년 8월 15일 이후 5년간 하다 35년 전 마감했다. 20대였던 그때 어머니를 닮으려고 노력했다면 1997년 말 40대의 나이로 정치에 투신한 이후에는 아버지를 본받으려 했을 것이다. 역경을 이겨내고 대통령이 된 지금은 더욱 그럴 것 같다.

육 여사는 ‘사람은 다 귀하다’는 생각으로 억울한 사람, 불쌍한 사람을 찾아다녔다. 전국의 한센인 환자촌을 방문할 때마다 천대받아온 그들의 손을 따듯하게 잡아주었다. 그에게 국모(國母)라는 칭송이 따라다닌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차례로 흉탄에 스러진 뒤 오랫동안 정권의 무관심과 냉대 속에 인고(忍苦)의 날을 살아온 박 대통령에겐 여성의 부드러움을 찾기 힘들다. 그는 신중한 언행이나 단호한 일처리, 가치관까지 ‘박정희의 아바타’처럼 아버지를 빼닮았다고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세월호법 협상에서 두 번이나 합의를 파기해 놓고 사과 한마디 없다. 최근 비공개 의총에선 히틀러의 독재정치에 빗대 박 대통령에게 막말까지 했다. 그러면서 꽉 막힌 ‘세월호 정국’을 풀 사람은 박 대통령밖에 없다는 말을 한다. 참 무책임하다. “억지를 쓰다 힘에 부치자 엄마한테 투정하는 어린아이를 보는 것 같다.” 최근 노무현 정부 때 장관을 지낸 사람도 야당의 이런 행태를 꼬집었다.

박 대통령이 나서야 할 때가 다가온 것 같다. 어머니 육 여사가 보여준 자애로움으로 세월호 유족부터 만날 채비를 하면 된다. 마음을 비운 채 경청하고 이들을 존중하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풀릴 여지는 있다. 대통령이 해줄 것이 없다는 이유로 주변에서 만류할 것이다. 그러나 법과 원칙을 훼손하지 않고도 여지가 있다면 부딪쳐 볼 필요가 있다.

장외투쟁에 나선 야당은 존재감을 잃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야당에 대한 싸늘한 민심이 피부에 와 닿는다. 투쟁의 동력이 약해진 야당은 진퇴양난에 빠진 형국이다. 이럴 때 박 대통령이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 7·30 재·보선의 교훈을 어느새 잊어버린 야당은 강경파가 득세하고 있다. 이런 야당도 국정의 파트너로 손을 잡아야 한다. 그래야 국정 마비도 풀 수 있다. 그게 큰 정치다.

박 대통령은 13일 국립서울현충원에 있는 육 여사 묘소를 찾아 미리 추도했다. 그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 대선후보 때 박 대통령은 홈페이지에 육 여사의 흑백사진을 올려놓았다. 당시 새누리당은 “박근혜가 바뀌네”라는 표현까지 쓰며 변화를 강조했다. 그러나 당선 이후 박 대통령에겐 여전히 소통하기 힘든 지도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올해 62세인 박 대통령이 열린 마음을 지닌 부드러운 지도자로 변신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난관에 부닥칠 때 ‘아버지라면 어떻게 했을까’라고 생각했다면 앞으로는 의식적으로 ‘어머니라면…’ 하고 답을 찾아보면 어떨까. 지금 박 대통령에게 절실한 것은 육 여사의 자애로운 모성 리더십이다. 시대 변화에 맞춰 대중과 친근하게 교감하는 ‘육 여사 따라하기’를 해볼 수는 없는가. 국정이 멈춰선 듯한 지금이 그런 변화를 다시 시도할 때다. 정치에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최영훈 논설위원 tao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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