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존경하는 사람으로 ‘부모님, 엘리자베스1세, 마거릿 대처’를 꼽은 바 있다. 자신의 부모님을 존경하는 사람의 맨 앞에 내세우는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대한민국 산업화의 기틀을 닦은 박정희 대통령이나 자애(慈愛)의 상징처럼 인식되는 육영수 여사가 부모라면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박 대통령은 어머니의 퍼스트레이디 역할과 아버지의 대통령 역할을 차례로 이어받았다. 퍼스트레이디 역할은 육 여사가 서거한 1974년 8월 15일 이후 5년간 하다 35년 전 마감했다. 20대였던 그때 어머니를 닮으려고 노력했다면 1997년 말 40대의 나이로 정치에 투신한 이후에는 아버지를 본받으려 했을 것이다. 역경을 이겨내고 대통령이 된 지금은 더욱 그럴 것 같다.
육 여사는 ‘사람은 다 귀하다’는 생각으로 억울한 사람, 불쌍한 사람을 찾아다녔다. 전국의 한센인 환자촌을 방문할 때마다 천대받아온 그들의 손을 따듯하게 잡아주었다. 그에게 국모(國母)라는 칭송이 따라다닌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차례로 흉탄에 스러진 뒤 오랫동안 정권의 무관심과 냉대 속에 인고(忍苦)의 날을 살아온 박 대통령에겐 여성의 부드러움을 찾기 힘들다. 그는 신중한 언행이나 단호한 일처리, 가치관까지 ‘박정희의 아바타’처럼 아버지를 빼닮았다고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세월호법 협상에서 두 번이나 합의를 파기해 놓고 사과 한마디 없다. 최근 비공개 의총에선 히틀러의 독재정치에 빗대 박 대통령에게 막말까지 했다. 그러면서 꽉 막힌 ‘세월호 정국’을 풀 사람은 박 대통령밖에 없다는 말을 한다. 참 무책임하다. “억지를 쓰다 힘에 부치자 엄마한테 투정하는 어린아이를 보는 것 같다.” 최근 노무현 정부 때 장관을 지낸 사람도 야당의 이런 행태를 꼬집었다.
박 대통령이 나서야 할 때가 다가온 것 같다. 어머니 육 여사가 보여준 자애로움으로 세월호 유족부터 만날 채비를 하면 된다. 마음을 비운 채 경청하고 이들을 존중하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풀릴 여지는 있다. 대통령이 해줄 것이 없다는 이유로 주변에서 만류할 것이다. 그러나 법과 원칙을 훼손하지 않고도 여지가 있다면 부딪쳐 볼 필요가 있다.
장외투쟁에 나선 야당은 존재감을 잃었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야당에 대한 싸늘한 민심이 피부에 와 닿는다. 투쟁의 동력이 약해진 야당은 진퇴양난에 빠진 형국이다. 이럴 때 박 대통령이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 7·30 재·보선의 교훈을 어느새 잊어버린 야당은 강경파가 득세하고 있다. 이런 야당도 국정의 파트너로 손을 잡아야 한다. 그래야 국정 마비도 풀 수 있다. 그게 큰 정치다.
박 대통령은 13일 국립서울현충원에 있는 육 여사 묘소를 찾아 미리 추도했다. 그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 대선후보 때 박 대통령은 홈페이지에 육 여사의 흑백사진을 올려놓았다. 당시 새누리당은 “박근혜가 바뀌네”라는 표현까지 쓰며 변화를 강조했다. 그러나 당선 이후 박 대통령에겐 여전히 소통하기 힘든 지도자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올해 62세인 박 대통령이 열린 마음을 지닌 부드러운 지도자로 변신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난관에 부닥칠 때 ‘아버지라면 어떻게 했을까’라고 생각했다면 앞으로는 의식적으로 ‘어머니라면…’ 하고 답을 찾아보면 어떨까. 지금 박 대통령에게 절실한 것은 육 여사의 자애로운 모성 리더십이다. 시대 변화에 맞춰 대중과 친근하게 교감하는 ‘육 여사 따라하기’를 해볼 수는 없는가. 국정이 멈춰선 듯한 지금이 그런 변화를 다시 시도할 때다. 정치에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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