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방형남]남재준 원장, 死則生 잊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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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형남 논설위원
방형남 논설위원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은 1년 전 취임식에서 직원들에게 “나는 전사(戰士)가 될 각오가 돼 있다. 여러분도 전사가 될 각오를 다져 달라”고 당부했다. 존경하는 이순신 장군이 남긴 ‘사즉생(死則生) 생즉사(生則死)’의 결기로 국가안보의 보루인 국정원을 이끌겠다는 다짐이었다. 남 원장은 군인 시절 임지마다 이순신 장군 초상을 걸어놓고 각오를 다졌다. 국정원장 관저에도 변함없이 장군의 초상이 걸려 있다.

국정원이 직면한 현재의 위기는 전사로서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절박하다. 국정원은 간첩사건과 관련한 증거 수집과정에서 중국인 정보원이 제공한 위조문서를 거르지 못한 것을 넘어 위조를 주도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중국인에게 놀아난 것도 창피한 일인데 검찰과 법원을 속이려는 시도까지 했다면 그야말로 국기문란에 해당한다.

정보기관에서 인간정보(휴민트·Human intelligence) 획득은 고급 정보 수집을 위해 가장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 임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으로 24년간 근무하며 탈레반 전복 공작을 지휘했던 헨리 크럼프턴이 ‘첩보의 기술’에서 설명한 인간정보의 중요성을 들어보자.

“인간 정보원의 포섭은 정보체계에 수혈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새롭게 검증된 정보원이 수혈되지 않아 정보흐름에 동맥경화를 초래하게 되면 첩보를 순환시키는 심장은 전보다 더 약하게 뛰게 되고 정보 조직은 손상을 입게 된다. 첩보가 없다면 정보의 다른 모든 요소는 쇠퇴할 수밖에 없다. 양질의 정보가 없이는 국정운영의 실행자들, 즉 지도자들은 제구실을 하지 못하게 된다.”

남 원장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휴민트와 관련된 정예요원 육성을 위한 교육체계와 예산 규모 등을 면밀히 검토해서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다짐과 반대로 국정원은 인간정보 포섭과 관리에 실패했다. 중국과 북한 접경지대는 대북(對北) 공작의 최전선이나 마찬가지다. 이번 사태로 현지에서 활동하던 국정원의 블랙요원까지 드러나 정부의 북한 관련 정보수집은 상당기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국정원 차장을 지낸 A 씨는 “스파이 세계에는 거짓 정보를 가져오는 브로커가 많기 때문에 속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검증을 다하는 것이 국정원의 기본인데 이런 참담한 사건이 발생해 은퇴한 나도 부끄럽다”며 허탈해했다. 개인적 실수보다 국정원의 구조적 문제에서 원인을 찾는 시각도 있다. 전직 국정원 차장 B 씨는 “최근 수년간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가 반복돼 국정원의 역량과 전문성이 급격하게 떨어졌다”며 “이를 바로잡아야 이번과 같은 실패를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해법은 남 원장이 이제라도 죽기를 각오하고 나서는 것이다. 그가 취임한 이후 국정원이 두 번이나 압수수색의 대상이 되는 치욕을 당했는데 무엇을 망설이나.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 때 우리 군은 많은 실수와 시행착오를 저질렀다. 하지만 국민은 군의 잘못을 질타하면서도 벼랑 끝으로 몰지는 않았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군을 흔들어 약화시키는 것은 이적행위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국정원도 마찬가지다. 중국인의 간첩행위 여부는 제쳐놓고 국정원만 공격하는 세력들이 있지만 대다수 애국시민은 교각살우(矯角殺牛)를 경계한다.

군과 국정원의 국가관과 충성심은 남다르다. 잘못은 도려내되 두 집단이 가진 장점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방법을 찾아야 한다. 국정원과 군은 사기를 먹고 사는 조직이라는 점에서도 공통점이 있다. 국민이 신뢰를 거둬들이면 군도 국정원도 설 땅이 없다. 국민의 마음을 잡으려면 남 원장을 포함한 특정인의 자리 보전보다는 국정원 바로세우기가 목표가 돼야 한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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