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신연수]바보야, 문제는 똑똑한 규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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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8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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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수 논설위원
신연수 논설위원
멕시코에선 최근 고양이가 시장 후보로 나와 화제가 됐다. 베라크루스 주 할라파 시에서 모리스란 고양이가 ‘온종일 빈둥대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인기몰이를 했다. 일종의 해프닝이었지만 쓸데없는 일만 하는 정치인들을 신랄하게 비꼰 것이다. 정치인들의 헛발질이 계속된다면 한국에서도 고양이나 개를 후보로 내세운 캠페인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요즘 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의원입법(국회의원이 발의하는 입법)과 관련해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자기가 발의한 법안에 대해 반대 발언을 하거나 반대표를 던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무슨 법을 발의했는지도 모르고 졸속 입법을 한다는 얘기다. 심사숙고하지 않은 규제가 양산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반대로 정부는 기업투자를 활성화하겠다며 규제 완화를 부르짖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과감한 규제 개혁’을 주문하면서 “모든 규제를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꾸라” 같은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도 기업 현장을 찾아다니며 ‘규제 완화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다.

국민은 혼란스럽다. 규제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그리고 십수 년간 역대 정부마다 규제 완화를 외쳤는데 아직도 규제 완화가 화두인 이유가 뭔지…. 규제 완화는 김대중 정부 때 본격화했다. DJ 정부는 ‘확 풀어버리겠습니다’를 모토로 모든 규제를 등록하고, 등록된 규제의 절반을 없애도록 했다. 실제 50% 정도의 규제가 개선돼 한꺼번에 많은 규제를 풀어야 하는 사회주의 국가들이 배우러 올 정도였다.

노무현 정부도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흐름에 따라 규제를 완화했고, 이명박 정부는 ‘규제 전봇대 뽑기’를 통해 대기업 규제를 많이 풀었다. 그러나 기업이나 국민이 느끼는 체감 규제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에 따르면 등록 규제 건수는 2008년 5186건에서 2012년 1만3914건으로 되레 4년 만에 2.7배로 늘었다.

새로 만들어지고 없어지는 법안들을 보면 더 기가 찬다. 화학물질관리법의 ‘유독물 영업허가권’은 2002년 환경부에서 지방자치단체로 이관됐다. 그런데 불산가스 등 유출 사고가 잇따르자 올해 법을 개정하면서 다시 환경부로 환수했다. ‘중소기업 고유업종’은 문제가 많다고 해서 2006년 노무현 정부 때 없앴는데, 동반성장위원회에서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살아났다. 순환출자 금지와 출자총액제한제도는 이명박 정부 때 없앴다가 경제민주화 공약으로 박근혜 정부에서 부활했다. 이처럼 규제를 없앴다가 문제가 생기면 다시 만드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엉망진창, 누더기 법안이 우리의 현실이다.

규제는 영어로 regulation(s)이다. 자유와 권리의 제한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공동체의 복리를 위한 사회적 규칙, 일련의 법령 체계를 일컫는 말이다. 법치 국가에서 민법 형법 외에 (규제가 많이 포함된) 행정법 등의 법령은 당연히 필요하다. ‘모든 규제는 존재 이유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규제 10% 줄이기’ 같은 방식으로는 규제 개혁이 이뤄질 수 없다. 규제 개혁을 할 때마다 공무원들은 숫자 위주로 미미한 규제들만 없애는 바람에 실질적인 효과가 전혀 없었다.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규제 개혁을 ‘규제 합리화’라고 정의한다.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들은 규제 완화(deregulation)가 아니라 더 나은 규제(better regulation), 똑똑한 규제(smart regulation)를 지향하고 있다. 규제 개혁은 돈과 시간이 많이 드는 과제다. 양적으로 접근할 게 아니라 개별 법안의 품질을 하나하나 살펴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그런데, 내일도 모레도 마구잡이로 쏟아져 나올 저 법안들을 다 어쩐단 말인가!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
#의원입법#졸속 입법#규제 완화#규제 합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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