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세형]이민 국가와 창업 경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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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형 국제부 기자
이세형 국제부 기자
이민자들이 나라를 세웠거나, 사회 구성원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이른바 ‘이민 국가’ 중에는 창업 강국이 많다.

대표적인 나라는 미국. 세계 최고의 정보기술(IT) 기업들이 탄생했고, 성장하고 있는 실리콘밸리의 ‘거물’ 중에는 본인이 이민자이거나 부모가 이민 온 경우가 흔하다. 미래 IT를 선도한다는 평가를 받는 구글의 경우 공동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러시아)과 최고경영자(CEO) 순다르 피차이(인도)가 모두 이민자다.

실리콘밸리에서도 ‘혁신의 상징’과 ‘롤모델’로 여겨지는 애플의 창업자인 고(故) 스티브 잡스는 시리아 이민자의 아들이다. 검색 엔진 야후, 전자상거래 기업 이베이, 전기자동차기업 테슬라 같은 굵직한 기업들도 이민 2세나 외국인 신분으로 미국에 건너온 이들이 세웠다.

이스라엘도 창업이 활발한 이민 국가다. 이스라엘의 기업인이 창업해 미국 나스닥에 상장돼 있는 회사는 80여 개로 미국, 중국 다음으로 많다. 한국과 ‘건국 동기’(1948년)인 이스라엘은 유럽, 미국, 중동 등에서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이주해 형성한 나라다. 이들은 유대민족이란 정체성은 공유했지만 수천, 수백 년 동안 서로 다른 지역에서 살아온 사람들이었고 갈등과 충돌도 많았다. 이전에 다양한 지역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언어와 문화는 물론이고 생김새도 달랐다. 현재도 실질적으로는 국민 다수가 이민자 혹은 이민자의 후손이다.

최근에는 싱가포르와 독일도 질 높은 기술 기반 창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싱가포르는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 출신 이민자들로 구성된 나라다. 독일은 동유럽과 중동 지역을 중심으로 최근 이민자를 적극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독일에서는 2015년 창업한 기업 중 44%를 비(非)독일인이 세웠을 만큼 이민자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이처럼 이민 국가들이 창업에 강할 수 있는 이유로는 역동성과 다양성이 뿌리내릴 수 있는 사회 환경이 꼽힌다. 배경이 다른 이민자들이 많아지면 사회적으로 새로운 것을 수용하고 이해하는 역량이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이 과정에서 혁신, 창조, 실험이 이뤄지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다. 사회 주류층이 선호하는 공직, 대기업, 금융권 등의 진출이 어려운 이민자들은 주류층 대신 과감한 ‘리스크 테이킹’(위험 감수)이 필요한 창업에 나선다는 분석도 있다.

이런 점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뒤 나타나고 있는 미국의 ‘반(反)이민’ 움직임은 실리콘밸리뿐 아니라 전 세계 이민 국가의 창업 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미국에서 시작된 반이민 움직임으로 다른 이민 국가의 창업 경제까지 약화되는 ‘도미노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 더군다나 미국은 ‘1등 국가’로 국제사회에 대한 영향력도 막대하다. 또 어느 이민 국가에서나 경기 침체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이민자에 대한 견제 움직임이 나타난다. 창업에서 미래 경제성장 동력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트럼프발’ 반이민 조치에 우려를 보내는 이유다.

이세형 국제부 기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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