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조건희]‘알파고 의사’의 난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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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희 정책사회부 기자
조건희 정책사회부 기자
 열 살 때 부모를 졸라 바둑판과 어린이용 입문서를 샀다. 바둑을 잘 두면 군대 선임들의 총애를 받아 얼차려와 구타를 덜 당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마하트마 간디의 위인전을 읽으며 비폭력주의를 뼛속 깊이 새긴 초등학생이 입대에 대비해 세운 생존 전략이었다.

 10여 년간 기력(棋力)을 닦은 뒤 입대해 보니 생활관(내무실)엔 바둑판 대신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 최신판이 놓여 있었고 바둑을 둘 줄 아는 선임은 전 부대를 통틀어 한 명밖에 없었다. 기자는 시대의 흐름을 내다보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며 바둑알 대신 조이스틱을 들고 축구 게임 ‘위닝일레븐’을 연습해야 했다.

 10년 만에 세상이 또 뒤집어졌다. 지난해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AI) 알파고가 최정상 기사인 이세돌 9단을 꺾었다. 최근엔 세계 랭킹 1위 커제(柯潔)를 비롯한 국내외 프로 기사들도 알파고에 60연패했다.

 10년 안에 AI는 의사도 따라잡을 거라고 한다. 한국고용정보원은 2025년 AI가 사람 의사의 업무 능력을 54.8%까지 대체할 거라고 예측했다. 국내에서도 의료용 AI 개발이 한창이다. 서울아산병원 의료진이 정보기술(IT) 업체 뷰노의 뼈 나이 측정 소프트웨어를 시연해 보니 판독에 걸리는 시간이 20분의 1로 단축됐다고 한다. 병원에서 ‘AI 의사’를 만날 날이 머지않았다.

 알파고가 바둑을 정복하는 것을 보면서 복잡다단한 기분이 들었지만 AI 의사의 등장은 반갑다. 언제 어디서나 일정한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임상병리학 전문의는 전립샘 암을 조직세포 현미경 영상으로 찾을 때 컨디션과 실력에 따라 다르게 진단할 수 있지만 AI는 환경적 요인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도서 벽지에 AI 소프트웨어가 보급되면 의료 격차도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장밋빛 전망이 실현되려면 선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첫째는 환자 정보 빅데이터를 구축하자는 사회적 합의다. AI가 질환을 정확히 진단하려면 수십만∼수백만 건의 환자 정보가 필요하지만 유출됐을 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일본은 이처럼 익명화된 정보를 환자 동의 없이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규정을 2015년 말 정했다. 미국은 정부 예산을 들여 공개용 환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익명 데이터를 다룰 자격 기준도 만들지 못하고 있다.

 둘째는 오진에 따른 윤리적 법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AI가 암 환자를 ‘음성’이라고 오진한 잘못이 더 큰가, 건강한 사람에게 ‘양성’이라고 오진한 책임이 더 큰가. 만약 전자라면 AI는 책임을 피하기 위해 거짓 양성 진단을 남발할 수도 있다.

 셋째는 정부의 굼뜬 움직임이다. 정부는 지난해 8월 AI 기반 진단·치료 기술을 지원하겠다고 밝히면서도 구체적인 사업 목표나 예산은 내놓지 못했다. 알파고가 인기를 끄니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부랴부랴 “AI 산업을 융성시키겠다”고 나서는 자세로는 10년 후 플레이스테이션 앞에 앉은 바둑 소년의 꼴을 면치 못한다.

조건희 정책사회부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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