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창덕]라이벌 구도가 바뀐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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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덕 산업부 기자
김창덕 산업부 기자
 ‘참이슬 경쟁 상대는 파브? 엔씨소프트 맞수는 미드?’

 2009년 5월 20일자 동아일보 2면에 실린 동료 기자의 기사 제목이다.

 동종 제품 및 서비스 간 시장쟁탈전을 넘어 전혀 다른 산업에 속한 기업들끼리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게 요지였다. 퇴근 후 여가(餘暇)를 공략해야 하는 소주 회사는 일찍 귀가해 영화나 드라마를 보도록 유인하는 TV 제조사와 경쟁해야 한다는 식이다.

 당시로서는 매우 신선한 시각이었고 또 화제도 됐었다.

 지금은 어떨까. 이종 산업 간 경쟁은 산업경계의 파괴로 한 발짝 더 나아갔다. ‘융합’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산업 간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변화가 가장 활발한 곳은 자동차산업이다.

 자동차에 전자장비가 하나둘 얹히기 시작한 것은 예고편에 불과했다. 다양한 정보기술(IT)이 적용되면서 자동차는 어느덧 거대한 IT 기기의 모습으로 변해 가고 있다. 글로벌 IT 업체들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는 건 당연한 얘기다. 구글은 이미 자율주행차 기술에서 가장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삼성전자도 미국 하만을 인수하면서 자동차 전장부품 업체들에 선전포고를 했다. 일부 전문가는 지금과 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자동차 시장의 주도권은 IT로 완전히 넘어갈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기존 완성차 및 자동차부품업체들도 IT와 융합한 차세대 자동차에 미래를 걸고 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지금까지 부품을 납품하는 수천 개의 협력업체에 ‘산업의 주인’으로 군림해 왔다. 그러나 전혀 다른 세계에 있던 소프트웨어(SW) 괴물들이 자동차산업에 속속 뛰어들면서 위기감은 점차 커지고 있다. 자동차 핵심 기술로 ‘숨은 강자’ 역할을 해왔던 보쉬, 콘티넨탈, 덴소 등 글로벌 자동차부품업체들도 마찬가지다.

 자동차와 IT 간 융합이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낼지도 주목되지만 두 산업 간 주도권 쟁탈전의 향방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내년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와 디트로이트에서 각각 열리는 ‘국제가전전시회(CES)’와 ‘북미국제오토쇼’는 큰 관심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개최 시기가 비슷한 것 외에는 서로 무관해 보이던 두 전시회는 어느덧 서로를 닮아 가고 있다. 올해 CES 기조연설은 카를로스 곤 르노닛산 회장이, 디트로이트 모터쇼 기조연설은 구글의 자율주행차 자회사인 웨이모의 존 크래프칙 최고경영자(CEO)가 맡는다. 독일 BMW, 보쉬 등은 자동차와 연관된 첨단 IT를 CES에서 선보이고, 구글과 IBM 등은 디트로이트 모터쇼를 신기술 발표 무대로 삼을 예정이다.

 미래 자동차산업을 둘러싼 자동차 업체와 IT 업체 간의 경쟁은 1990년대 글로벌 스포츠업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이종격투기’를 연상시킨다. 주짓수, 유도, 복싱, 레슬링 등 다양한 종목에 기반을 둔 격투가들은 ‘챔피언 벨트’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경쟁을 펼친다.

 이종격투기 팬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어느 종목이 실전에 가장 강한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곤 한다. 과연 미래 자동차산업에서는 누가 챔피언이 될까. ‘한국 챔피언’을 기대할 수는 있는 것일까.

김창덕 산업부 기자 drake007@donga.com
#정보기술#it#자동차#국제가전전시회#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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