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민동용]책임과 수습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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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동용 정치부 차장
민동용 정치부 차장
4월 중순 어느 저녁 자리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중진 의원은 “한국과 미국 정치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참석자들이 고개를 갸우뚱하자 이 의원은 빙그레 웃으며 “책임과 수습”이라고 했다. 큰일이 터졌을 때 한국은 ‘책임’을 강조하는 반면 미국은 ‘수습’을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정치인이든 관료든 누구든 책임을 지고 현직을 사퇴하면 사태는 정리 국면에 들어간다. 반면 미국에서는 누가 책임져야 하는지를 찾기보다 상황 수습을 우선시한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문제는 그 다음”이라고 했다. 한국은 누군가 책임을 지고 나면 수습은 등한시한다. 자리에서 물러난 사람의 실책을 문제 삼으려 하면 여론이 악화된다. ‘책임지고 물러났으면 됐지…. 다 끝난 일 아니냐’는 동정론이 우세해진다. 반면 미국은 수습이 되고 나면 책임자들의 잘잘못을 따져 엄정히 처리한다는 것이다.

의원 개인의 인상비평적 관찰이긴 하다. 그러나 정치에서 책임과 수습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정치 지도자라면 더욱 그렇다.

석 달 전의 기억을 다시 떠올린 이유는 새정치연합의 현재 상황 때문이다. 청와대와 여당이 극심한 내홍을 겪었는데도 제1야당의 지지율은 제자리걸음이다. 친노(친노무현) 진영과 비노(비노무현) 진영, 당 대표와 원내대표,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의 갈등은 이제 일상화됐다. 신당, 분당, 탈당…. 설(說)들이 어지럽다. 4·29 재·보궐선거 이후 책임과 수습의 부재가 이런 결과를 낳았다고 봐도 틀리지 않을 성싶다.

당 대표가 된 지 2개월여 만에 맞은 재·보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문재인 대표에게 사퇴하라는 건 무리한 요구일 수 있다. 당시 여론도 문 대표의 사퇴 쪽으로 흐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선거 패배 이튿날 문 대표가 ‘박근혜 정부와의 전면전’을 선언한 것은 책임지는 자세는 아니었다. 한 최고위원은 “문 대표가 그때 ‘책임을 통감한다. 의원총회나 중앙위원회에서 재신임을 묻겠다’고 했다면 비노 진영이 차마 불신임을 했을까?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책임은 지나갔지만 수습은 남았다. 선거 패배 후의 새로운 당직 인선이 그것이다. “계파의 ‘ㄱ’자도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 “더 넓게 탕평하겠다”라는 문 대표의 공언을 현실화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결과는 유쾌하지 않았다. 어느새 당직 인선은 혁신위원회의 혁신안에 삼켜져 버린 형국이다. 전당대회 때 문 대표를 지지한 것으로 알려진 한 486 의원은 “수습할 여지가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수습을 혁신으로 덮어 버리지 않았느냐”라고 탄식했다.

혁신안이 20일 중앙위원회를 통과하면 문 대표에게는 다시 한번 수습할 기회가 온다. 사무총장직이 없어지고 5개 본부장 체제로 바뀌면서 닥칠 또 한번의 당직 인선이다. 답은 나와 있다. 서두에 밝힌 의원의 주장을 역으로 생각하면 한국 정치에서는 수습을 하고 나면 책임을 묻지 않는다.

민동용 정치부 차장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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