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종석]물벼룩을 위한 애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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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 정책사회부 기자
이종석 정책사회부 기자
물벼룩.

척추 없는 절지동물이다. 몸집은 아무리 커봐야 5mm 정도. 갓 태어난 물벼룩은 볼펜으로 점을 톡 찍은 정도의 크기다. 수명은 50일가량. 이런 물벼룩한테 최근 환장할 일이 하나 생겼다. 환경부가 생태독성 시험 기준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것.

생태독성 시험은 공장에서 배출되는 폐수의 오염도를 확인하기 위해 살아 있는 동물을 폐수에 집어넣고 죽는지, 안 죽는지를 지켜보는 것이다. 요즘같이 과학기술이 발달한 세상에 폐수 오염도를 이따위로 확인한다고? 지구상 유해 화학물질이 24만 종이 넘는다. 이 중 국내에 유통되는 것만 4만 종이다. 하수, 폐수에 섞여 강으로 흘러드는 유해 화학물질을 종별로 일일이 다 측정하기에는 시간과 돈이 너무 많이 든다. 그래서 몇몇 유해 화학물질에 대해서만 성분과 농도를 측정하고, 나머지는 물벼룩에게 맡긴다. 다른 나라들도 이런 시험을 한다.

하고많은 동물 중에 왜 하필 물벼룩일까. 물고기를 희생양으로 삼을 수도 있지만 물벼룩에 비해 비용이 많이 든다. 동물원의 돌고래, 물개 쇼가 동물학대라고 난리 치는 동물보호단체도 물벼룩 수만 마리 죽어나가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소리 안 한다.

환경부가 하루 폐수 배출량 700m³ 미만 사업장에 대해 생태독성 시험 기준을 내년부터 강화하기로 했다. 그동안은 방류 폐수 25mL에 희석수 25mL를 섞은 용액에 물벼룩을 집어넣었는데 앞으로는 100% 폐수(50mL)로만 시험하겠다는 것이다. 물벼룩 입장에선 살아남을 확률이 더 떨어지게 생겼다. 물벼룩 20마리를 24시간(물벼룩 수명의 50분의 1) 폐수에 담가 놓고 이 중 50% 이상이 생생하면(죽지 않고+헤엄치는 능력도 떨어지지 않으면) 기준치를 통과한 폐수로 본다.

메르스로 온 나라가 난리인데 웬 뜬금없는 물벼룩 얘기? 하다못해 메르스를 옮긴다는 낙타 얘기도 아니고…. 필자가 물벼룩을 떠올린 건 16일 전국경제인연합회를 포함한 경제단체들이 정부의 2020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반발해 공동 성명을 발표하는 것을 보면서다. 경제단체들 주장은 지나친 규제라는 것. 정부 목표대로면 산업 공동화로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는다는 것이다.

물벼룩도 말을 할 줄 알았으면…. 경제단체들처럼 기자회견 한 번 하지 않았을까…. 그런 공상(空想)을 했다. “기업들 다 죽는다”는 경제단체들 얘기는 ‘앓는 소리’로 들리지만 물벼룩은 진짜 죽는다. 할 수만 있다면 어디 기자회견뿐이겠나….

길어진 공상 끝에 말 못 하는 물벼룩을 위해 ‘금수회의록’(동물을 의인화해 사회를 풍자한 1908년 출간 신소설)까지 떠올렸다. 금수(날짐승, 길짐승)에는 해당이 안 될 것 같은데, 그래도 물벼룩이 회의 발언권을 갖는다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우리도 아무 소리 안 하는데, 일단 한 번 해보고 정 안 되면 그때 가서 감축량 줄여 달라고 해라. 해보지도 않고 왜 자꾸 우는소리냐.” 아마도 이런 말을 경제단체들에 하지 않았을까.

이종석 정책사회부 기자 wing@donga.com
#물벼룩#생태독성 시험#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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