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종석]규제 수혜자는 봉?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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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 정책사회부 기자
이종석 정책사회부 기자
매달 내는 수도요금. 쓴 물값만 낼까?

실제로는 쓴 물값보다 더 내는 가구가 많다. 한강수계권 서울의 25개구 전체, 강화와 옹진군 일부를 뺀 인천 전역, 수원 성남 고양 용인 등 경기도 내 25개 시. 이곳 주민들이 받는 수도요금 고지서에는 실제 사용한 물값에 ‘물이용 부담금(부담금)’이 통합 부과된다.

부담금? 그런 게 있었나?

부담금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부과대상 지역 주민 1000명에게 물었더니 이를 안다는 사람은 열 중 셋도 안됐다. 부담금은 1999년에 생겼다. 설치 목적은 두 가지. 상수원 상류지역 주민 지원과 수질 개선이다. 팔당호 같은 상수원을 지키기 위해 건축제한을 비롯한 이런저런 행위 규제가 상수원 보호구역에 따라붙는다. 규제로 인한 불편을 감수하고 사는 상류지역 주민을 위한 시설 마련과 복지사업 등에 들어가는 비용을 규제 수혜자 격인 하류지역 주민이 부담하는 것. ‘한강수계 상수원 수질개선 및 주민지원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를 둔 부담금은 납부 의무자가 내지 않을 경우 지방세를 체납한 것으로 간주하는 일종의 준조세다.

얼마나 낼까?

t당 80원에서 시작한 부담금이 지금은 170원으로 올랐다. 2013년 상수도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국민 한 사람의 하루 수돗물 사용량은 282L. 4인 가구 기준으로 따지면 매달 고지서에 찍히는 전체 납부액 중 5700원 정도는 물값이 아니라 부담금이라는 얘기다. 2013년 한 해에만 서울 시민이 1803억 원, 인천 507억 원, 경기 1945억 원 등 모두 4255억 원을 부담했다. 이 중 16%가량인 694억 원이 상류지역 주민 지원에 쓰였다.

지난달 상수원 보호구역에 대한 규제가 일부 풀렸다. 상수원 취수시설로부터 4km를 벗어나면 제한적으로 공장을 지을 수 있게 됐다. 이전까지는 상수원 보호를 위해 취수시설에서 7km 이내에는 공장 설립이 불가능했다. 지난해 9월 청와대에서 열린 규제개혁장관회의 때 한 민원인이 박근혜 대통령 앞에서 관련 민원을 제기한 후 일사천리로 진행되면서 규제 완화까지 석 달이 채 안 걸렸다.

필자도 상수원 하류지역 주민이다. 부담금 납부자 입장에서 든 몇 가지 생각.

안전한 물을 마실 수 있는 혜택을 전제로 부담금을 꼬박꼬박 내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일언반구 설명도 없이 규제를 완화해 버리지? 규제 수혜자들이 봉인가? 수도권 시민 2000만 명의 상수원이라는데 번갯불에 콩 볶듯 이래도 되나? 규제를 완화했으면 부담금도 좀 깎아줘야 하는 것 아닌가?

앞으로도 수많은 규제 완화 관련 논의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주민에게 피해를 주는 규제를 암덩어리에 비유하면서 규제는 곧 악(惡)이란 분위기가 짙어졌다. 하지만 규제가 있어 보호받는 이익이 규제에 따른 피해보다 더 큰 경우도 있다. 모든 규제를 꼭 돈이 되는지 안 되는지, 경제논리만 따져가면서 볼 일은 아니다. 시민 건강과 안전이 걸린 문제라면 말할 것도 없다.

이종석 정책사회부 기자 wing@donga.com
#규제 수혜자#봉#수도요금#부담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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