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재명]청와대는 말이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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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치부 차장
이재명 정치부 차장
부끄럽지만 고백해야겠다. 설마 하겠지만 진짜다.

김관진 대통령국가안보실장은 4일 남한을 찾은 북한 최고위급 ‘실세 3인방’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우리나라 TV에 세 분이 자주 나와 얼굴이 낯설지 않다. 친숙하다.” 청와대를 출입하는 기자도 마찬가지다. 김관진 실장이 TV에 종종 나와 낯설진 않다. 그렇다고 친숙한 건 아니다. 김 실장과 대화를 나눠본 적이 한 번도 없는 탓이다.

지난해 12월 최원영 대통령고용복지수석비서관이 청와대 기자실인 춘추관을 찾았다. 원격의료는 의료민영화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브리핑을 하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상당수 기자들은 수군댔다. “누구야?” 수석 얼굴을 아는 기자가 드물었다. 임명된 지 4개월이 넘었는데도 말이다. 만난 적이 없으니 기자들을 탓할 일이 아니다. 김영한 민정수석이나 정진철 인사수석은 바로 옆에 서 있어도 알아보지 못할 게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수석비서관들에게 “우린 주말도 없이 살아야 한다”고 했으니 만남은 포기할 수 있다. 하지만 전화 통화조차 하늘의 별따기다. 오죽하면 기자들 사이에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당최 전화를 받지 않으니 통화버튼을 누르면서 으레 전화를 받지 않겠거니 생각한다. 그러다 정작 전화를 받으면 기자가 깜짝 놀라 할말을 잃는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수석이나 비서관도 많다. 하지만 그들 역시 ‘보안 강박’에 늘 말끝을 흐린다. “이거 나가면 곧바로 색출령 떨어지는 거 알죠?” 그러니 기사에 등장하는 ‘청와대 관계자’는 죄다 이정현 전 홍보수석(현 국회의원)인 때가 있었다.

청와대는 노무현 정부 때부터 기자들의 출입을 원천 봉쇄했다. 청와대가 마음만 먹으면 모든 정보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국가의 중요 정보가 모이는 청와대는 각별한 보안의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보안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사안의 원활한 진행을 위한 수단이다. 사안이 종결되면 당연히 국민에게 상세한 설명이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북한 실세 3인방이 전격 방문해도, 송광용 교육문화수석이 3개월 만에 경질돼도, 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느닷없이 사퇴해도 청와대는 아무런 말이 없다. 그러다 논란이 커지면 뒤늦은 해명으로 오히려 의혹만 키운다. 박 대통령의 측근 3인방 사칭 사건도,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행적 논란’도 이런 배경 속에서 잉태됐다고 본다.

박근혜 정부 초기 청와대에서 근무하다가 지금은 자연인이 된 한 인사의 말이다. “박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 때보다 국정운영이 800배 힘들다. 일단 경제 규모가 100배 커졌다. 여기에 반대만 하는 야당으로 2배, 진영논리에 갇힌 시민단체로 2배, 우호적이지 않은 언론 환경으로 2배씩 더 힘들다. 이를 모두 곱하면 800배다. 그렇다면 소통에도 수백 배 노력을 해야 한다. 하지만 참모들이 박 대통령만 쳐다보고 있으니 문제가 풀리기보다 점점 꼬이는 것이다.”

이재명 정치부 차장 egija@donga.com
#청와대#의료민영화#최원영#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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