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성호]쌍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이성호 사회부 기자
이성호 사회부 기자
화투판의 ‘쌍피’가 아니다. 여기서 쌍피는 ‘쌍방 피해’의 줄임말이다. 싸움이 발생했을 때 ‘누가 먼저냐’에 상관없이 일단 양측을 같은 피해자 신분으로 분류할 때 쓰는 말이다. 이를 가해의 기준으로 표현하면 ‘쌍방 폭행’이다.

고스톱 게임에서 쌍피는 유리한 판세로 이끄는 패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쌍피의 주인이 되면 이길 공산도 크다. 그러나 폭력사건에서 쌍피의 주인공이 되면 골치만 아프다. 시비를 건 사람과 함께 입건되고 원인 제공의 여부보다는 피해 정도의 크기에 따라 처벌받는 경우가 많다. 결국 진단서에 적힌 치료기간만 따져서 울며 겨자 먹기로 화해할 수밖에 없다. 만약 자기 일도 아닌 남의 싸움에 휘말린 사람들은 더 억울할 수밖에 없다.

17일 발생한 세월호 유가족 대리기사 폭행 사건과 관련해 경찰은 26일 현장에 있던 목격자 정모 씨(35)를 폭행 혐의로 입건했다.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원회 김형기 전 수석부위원장이 ‘쌍방 폭행’의 상대방으로 지목했기 때문이다. 졸지에 쌍피의 당사자가 된 정 씨 측은 “오히려 싸움을 말렸을 뿐”이라며 펄펄 뛰고 있다.

여론도 들끓었다. “집단폭행 말린 사람을 처벌하는 것이 대한민국 현실”이라는 비판이 줄을 이었다. “불의를 봐도 그냥 모른 척하라는 것”이라며 꼬집는 목소리가 많았다. 경찰은 절차상 불가피성을 강조하며 억울해하는 모습이다. 진위를 떠나 상대방(김 전 수석부위원장)의 주장이 있고 폐쇄회로(CC)TV 영상에서 정 씨의 폭행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정 씨의 폭행이 확인돼도 정당방위가 인정되면 무혐의 처분이 가능하다. 실제로 경찰은 올해 4월부터 이른바 ‘선한 사마리아인 규칙’으로 불리는 새로운 폭력사건 수사 지침을 마련해 시행 중이다.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는 강도를 당해 큰 부상을 입고 길가에 쓰러진 행인을 모두 지나쳐 갔지만 한 사마리아인이 나서서 도와줬다는 성경 내용이다.

정당방위는 △상대방의 침해행위에 방어하기 위한 것 △먼저 폭력을 휘두르지 않을 것 △폭력행위의 정도가 상대방보다 덜할 것 △흉기나 위험한 물건을 사용하지 않을 것 등의 요건을 갖추면 인정된다. 특히 새로운 지침에는 상대방의 피해가 자신보다 커도 사회통념상 필요한 한도 내의 행위로 인정되면 정당방위로 판단하도록 하고 있다.

이런 경찰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정 씨의 입건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여전히 불신이 가득한 편이다. 서로의 주장이 엇갈리고 증거마저 충분치 않은 경우 정당방위 입증이 너무 힘들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사건 초기에 소위 ‘봐주기’ 논란을 일으킨 경찰의 소극적인 모습도 불신을 부채질하고 있다.

정 씨가 억울한 쌍피의 당사자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이는 남은 수사에서 경찰이 밝혀야 할 내용이다.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까지 거론할 필요도 없다. 그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지침에 있는 그대로 수사하면 될 일이다.

이성호 사회부 기자 starsky@donga.com
#쌍방 피해#세월호 유가족#대리기사 폭행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