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재명]사마귀 뒤에 참새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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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치부 차장
이재명 정치부 차장
1980년 5월 15일 서울역 광장은 해방구였다. 대학생 10만여 명이 모여 ‘비상계엄 해제’ ‘전두환 퇴진’을 요구했다. 신군부는 총칼로 무장했다. 소형 버스에 모인 학생회 지도부 사이에선 격론이 오갔다. 물러설 것인가, 목숨을 걸고 나갈 것인가. 서울대 총학생회장 심재철(현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고뇌 끝에 철수(撤收)를 택했다. 이른바 ‘서울역 회군(回軍)’ 사건이다. 신군부는 이틀 뒤 전국으로 비상계엄을 확대했다. 이어진 광주의 비극…. 결과론적 얘기지만 ‘서울역 회군’이 신군부에게 자신감을 안겼다는 주장도 있다. 당시 ‘돌격 앞으로’를 외쳤다면 1987년 6월 항쟁을 7년 앞당길 수 있었을까.

심 최고위원이 10일 기초선거 무공천을 철회한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에게 “이름(철수)이 불명예스러운 트레이드마크가 됐다”며 정계 은퇴를 요구했다. ‘철수의 원조’ 격이 내놓은 훈수치곤 가혹했다. 신나게 맞장구를 치던 새누리당 지도부는 이날 오후 청와대로부터 “안철수 동정론이 일고 있다. 품격 있게 대응하라”는 ‘지침’을 받고서야 자중했다. 국민은 오만한 모습에 즉각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안 대표의 ‘철수 본능’이야 그렇다 치자. 새누리당은 뭐가 좋아 낄낄대나.

지난 대선 여야가 마음에도 없는 정치개혁 공약을 쏟아낸 이유는 간단하다. 새 정치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느닷없이 안철수에게 투영돼 정치권을 강타했기 때문이다. ‘안철수 태풍’은 조만간 소멸될지 모른다. 그렇다고 새 정치에 대한 국민의 열망마저 사라질까. 언젠가 그 열망의 파괴력은 더 커져 정치권을 뒤흔들 것이다.

당랑규선(螳螂窺蟬)이란 말이 있다. 사마귀가 매미를 잡으려 엿본다는 뜻이다. 유래는 이렇다. 춘추시대 오(吳)나라 왕 부차가 옷이 젖은 아들을 보고 사연을 물었다. 아들은 설명했다. “아침에 정원에 갔더니 나뭇가지에 매미가 앉아 울고 있었습니다. 그 뒤를 보니 사마귀가 매미를 잡아먹으려 노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홀연 참새가 날아와 사마귀를 노리는데 사마귀는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저는 참새를 향해 활시위를 당겼는데, 그만 활을 쏘는 데 정신이 팔려 웅덩이에 빠졌습니다.”

안철수는 기초공천 폐지를 꺅꺅 외쳐댄 매미다. 매미는 조만간 새누리당과 친노라는 사마귀에게 잡아먹힐지 모른다. 하지만 참새(국민)의 관심은 매미가 아니다. 사마귀가 사마귀인 이상 참새가 놓아줄 리 없다. 눈앞의 이익에 쫓겨 뒤따를 화(禍)를 생각지 않는 사마귀가 지금의 정치권이다. 그런데도 “새 정치는 완전히 땅에 묻혔다(박대출 새누리당 대변인)”니 그들의 기백이 가상하다.

‘서울역 회군’과 그 이후 비극의 책임을 당시 열혈 대학생들에게 지울 수 없다. 오히려 김영삼, 김대중 두 민주화의 거두가 박정희 이후 집권 계획을 짜느라 전두환을 얕잡아 보지만 않았어도 민주화가 더 일찍 왔을지 모른다. 물론 결과론적 얘기지만….

이재명 정치부 차장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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