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하정민]중앙은행 총재 모시는 법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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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민 국제부 기자
하정민 국제부 기자
2012년 초 조지 오스본 영국 재무장관은 속이 탔다. 루이 14세 못지않은 절대 권력을 휘둘러 ‘태양왕’이라는 별명이 붙은 머빈 킹 당시 영국 중앙은행 총재의 임기 만료가 1년 앞으로 다가왔지만 후임자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럽 재정위기로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했고 리보금리 조작 사태로 금융 강국의 명성도 말이 아니었다.

이때 오스본 장관이 주목한 사람은 마크 카니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 그는 과감한 금리인하로 캐나다의 금융위기 극복을 앞당겼다는 찬사를 받고 있었다. 문제는 카니가 영국인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게다가 영국 중앙은행인 영국은행은 1694년 설립된 세계 최초의 중앙은행. 대영제국의 영광이 저물었다지만 영국은행의 318년 역사에 외국인 총재는 없었다.

국적을 따질 상황이 아님을 안 오스본 장관은 카니의 마음을 얻으려고 약 1년간 그를 설득했다. 임기 8년 중 5년만 재임, 높은 연봉, 이사비 일체 지원, 집값 비싼 런던에서의 주거비 제공이라는 카니의 까다로운 조건도 다 들어줬다. 2013년 7월 취임한 카니의 연봉은 세계 중앙은행 총재 중 가장 많은 130만 달러(약 13억7800만 원).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한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의 20만 달러보다 6배 이상으로 많다. 하지만 깐깐한 영국 언론이 트집을 잡은 적은 없다. 총재의 연봉이나 국적보다 더 중요한 건 그의 능력임을 알기에.

선진국 후진국 모두 먹고 사는 일이 최우선 과제인 지금 유능한 중앙은행 임원을 모시려면 이 정도 예우가 기본이다. 지난달 연준 부의장에 뽑힌 스탠리 피셔 전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를 영입한 사람은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이다. 국제통화기금(IMF) 부총재 출신인 피셔는 옐런보다 국제금융계에서 인지도가 훨씬 높은 거물. 이에 백악관은 피셔의 영입을 포기했지만 ‘부의장 상왕정치’ 위험을 알고 있을 옐런 본인이 삼고초려를 했다.

잠비아 출신 미국인인 피셔는 2005년 외국인 신분을 지닌 세계 최초의 중앙은행 총재가 됐다. ‘무늬만 유대인’인 이를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로 앉혔다는 비판이 많았지만 당시 아리엘 샤론 총리와 베냐민 네타냐후 재무장관은 “경제가 더 중요하다”고 버텼다. 지난해 인도 중앙은행 총재가 된 라구람 라잔 미 시카고대 교수도 혈통 빼곤 미국인에 가까워 폐쇄적인 인도 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2004년 총선에서 승리한 소니아 간디 인도 국민의회당 대표가 이탈리아 출신이라는 이유로 총리가 되지 못한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3월 말 임기를 마친다. 활발한 국제 활동이라는 공(功)보다 정책 실기, 불통 등 과(過)가 크다는 의견이 많다. 2012년에는 미 금융지 글로벌파이낸스로부터 ‘세계 최악의 중앙은행 총재’로 뽑히는 수모도 겪었다. 차기 총재는 반드시 한은 본연의 역할, 즉 통화정책의 전문성 및 금융시장과의 교감능력을 갖춘 인물이어야만 한다. 정부는 총재 인선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 ‘개국공신 배려’만 없어도 절반은 성공이다.

하정민 국제부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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