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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조종엽]강제징용자 恨 언제까지 외면할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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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조종엽]강제징용자 恨 언제까지 외면할건가

조종엽 문화부 입력 2016-08-17 03:00수정 2016-08-17 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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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은 자국민 포로 유해수습 분주
오빠 소식 애타는 80대 여동생에 “정부가 나섰다” 전화 드릴날은…
조종엽·문화부
71주년 광복절인 15일, 좋지 않은 소식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몰라 차일피일 미루다 뒤늦게 전화를 걸었다.

“아유, 아유, 아유…. 딱해라, 우리 오빠….”

박남조 할머니(83·충북 충주시)는 전화기 너머에서 울먹였다. 할머니의 오빠 박태일 씨(1927년생)는 1944년 관동군으로 끌려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일제 패망 뒤 소련의 포로가 돼 시베리아 크라스노야르스크의 수용소에서 1947년 12월 6일 사망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는 8·15 기획으로 강제동원 뒤 잊혀진 피해자를 보도하면서 지난달 말 크라스노야르스크 매장지를 찾았지만 박 씨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출발 전 만난 할머니의 소망은 안타깝게도 이뤄지지 않았다. “오늘 마음이 더 썰렁해요, 8·15라…. 아이고, 거기까지 가서 못 찾고 오면 어떡해. 정부에서 찾아주면 좋겠는데….” 기자가 할 수 있는 말은 정부가 나서면 꼭 연락드리겠다는 것뿐이었다.

일본 정부는 현지에 묻힌 자국민 포로 유해를 수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 크라스노야르스크 시청 측의 기록을 줄이면 이렇다.

“1994년 8월 일본 정부 관계자가 묘지를 방문했다. 1996년 일본 정부가 매장지를 조사하자는 청원서를 내 발굴이 시작됐다. 1998년 일본 정부가 매장지를 조사해 니콜라옙스크 묘지에서 유해를 찾았고, 화장해 일본으로 가져가서 도쿄 지도리가후치(무명용사 묘역)에 안장했다. 2000년 유족회 대표단이 방문해 묘지 3군데에 위령비를 세웠다. 2002년 사쿠라(벚나무) 묘목 110개를 기증했다. …”

여러 차례 제사를 지냈다는 내용도 있었다. 위령비에는 ‘준공 일본국 정부’라는 글씨가 선명했다.


러시아 사할린에서 발견된 억류 한인 관련 새 명부를 보도한 뒤 황당한 일도 생겼다.

행정자치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이 “언론에 개인정보를 준 게 아니냐”며 명부를 찾아낸 연구자를 추궁한 모양이다. 기사에 밝힌 개인정보라면 경남 밀양군 출신 강제동원 피해자 김성동 씨 한 명인데, 이는 국가기록원에서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왜정 시 피징용자 명부’를 보고 쓴 것이다. ‘지원단’이 역사의 진실을 밝히겠다는 연구자에게 지원을 더 하지는 못할망정 도리어 발목을 잡으려는 건 최근 정부의 미미한 대응을 감추고 싶어서인가.

강제동원 피해자 유골 봉환의 1차 책임은 당연히 일본에 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우리 유족의 한을 내버려둘 것인가. 기자가 박 할머니에게 “우리 정부가 나섰다”는 전화를 걸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조종엽 문화부 jjj@donga.com
#강제징용자#일본#정부#포로#광복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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