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정은]알고도 보도할수 없었던 ‘유해 봉환’ 국군포로 당당히 모셔올 길 언제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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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정치부 기자
이정은 정치부 기자
막 두만강을 건너 전달된 종이 박스의 모서리는 축축했고 군데군데 흙이 묻어 있었다. 겉면에 중국산 오디오 그림이 붙어 있는 가로 60cm, 세로 40cm 크기의 박스를 열어젖히자 흰색 무명천으로 싼 유골이 나왔다. 두개골과 대퇴부, 척추 등 30여 개의 크고 작은 뼈들은 검게 변색돼 있었다.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지난달 11일 북한에서 반출된 국군포로 손동식 씨의 유해를 가장 처음 접한 동아일보 고기정 베이징특파원이 전해 온 장면은 참담했다. 고 특파원이 만난 ‘브로커’는 “삼엄한 국경 경비를 피해 접경지역의 강 옆 수풀에 몇 시간 숨어 있다가 간신히 (유해) 박스를 갖고 나왔다”고 말했다.

기자가 한 대북 소식통에게서 ‘국군포로 유해를 사상 처음으로 민간 차원에서 온전히 반출하려는 시도’를 우연히 듣게 된 것은 9월 초. 그러나 첫 보도(9월 11일자 A1면)는 유해가 북한 국경을 건너 중국 모처에 안전하게 보관된 사실을 확인한 뒤에야 지면에 실렸다. 하지만 유해가 조국 땅을 밟기까지에는 여전히 지난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부는 유해 반출을 시도한 손 씨의 딸 명화 씨의 요청으로 3차례 관계 부처 대책회의를 열고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그러나 해결책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유골의 유전자(DNA)를 확인하지 못한 상태에서 지원과 예우의 범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등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딸 명화 씨와 정부 관계자들 사이의 물밑 논의 과정에서 거친 언사가 오가기도 했다.

정부가 손 씨의 유해를 최대한 예우키로 최종 결정한 것은 이달 3일 오후. 하지만 관계자들은 이 사실을 파악한 기자에게 “안전하게 귀국할 때까지 보도를 연기해 주면 안 되겠느냐”고 호소했다. 고민 끝에 다시 기다리기로 결심했다. 국방부는 4일 오전 유해 봉환 시점까지 비보도(엠바고)를 전제로 관련 내용을 출입기자들에게 사전 브리핑했다. 기자로서는 눈 뜨고 단독보도를 날려 버린 셈이다.

6·25전쟁 이후 귀환하지 못한 국군포로는 1만9000여 명이고 현재 북한에 생존 중인 국군포로는 500여 명에 불과한 것으로 정부는 추산하고 있다. 바꿔 말하면 북한에 묻혀 있는 국군포로는 1만8000여 명이나 된다. 손 씨의 경우처럼 어렵고 비밀스러운 봉환 시도가 재연되지 않으려면 정부가 정식으로 국군포로 문제를 제기하고 당당하게 모셔 올 수 있어야 한다. 알고도 쓰지 못하는 기자의 안타까운 기다림과 침묵도 다시 되풀이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정은 정치부 기자 lightee@donga.com
#국군포로 유해#유해 반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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