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수연]골목폭력 신고했더니 ‘주소’대라는 경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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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사회부 기자
김수연 사회부 기자
3일 오후 8시 30분경 서울 마포구 서교동 한 주택가. 친구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길을 지나던 기자는 골목길에서 나는 “퍽!” 소리에 멈춰 섰다. 골목을 들여다보니 가로등 아래서 10여 명의 고교생으로 추정되는 무리가 한 학생을 빙 둘러싼 채 돌아가며 손으로 머리를 내리치고 있었다. 맞는 학생은 신음만 낼 뿐 전혀 저항을 못 했다. 폭행을 하는 아이들의 낄낄거리는 웃음과 때릴 때마다 나는 소리는 머리카락을 쭈뼛 서게 할 정도였다.

기자의 친구가 곧 112에 전화했다. 그는 112 접수 경찰관에게 골목길에서 2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집 대문에 적힌 주소와 인근 대형 오피스텔 이름 등을 설명하며 출동해 달라고 요청했다.

3분 뒤 서울 마포경찰서 홍익지구대에서 연락이 와 정확한 위치를 물어보더니 순찰차를 출동시켰다고 했다. 이어 2분가량 지난 뒤 한 경관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 경찰은 신고한 지역으로 추정되는 곳에 가 봤지만 학생들이 없다며 “(폭행 지점의) 주소를 말해 달라”고 요구했다. 경찰은 그 후로도 서너 차례 전화를 걸어와 ‘정확한 주소’를 말해 달라는 요구를 되풀이했다.

신고로부터 10분이 지날 때까지 신고자와 경찰 사이에 오고 간 통화는 5건. 경찰은 결국 “골목 근처를 샅샅이 뒤졌지만 학생은 없었다”며 사안을 종결하려는 투로 말했다. 보다 못해 기자가 친구의 전화를 넘겨받아 “학생들이 없다 해도 멀리 가지 못했을 테니 순찰 범위를 넓혀 더 탐문해야 되는 것 아니냐. 10분이면 멀리 가지 못했을 텐데, 다른 장소에서 또 폭행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경찰은 “또 폭행을 할지 내가 어떻게 아느냐”며 짜증을 냈다.

길 가다가 우연히 사건을 목격한 시민이 주소까지 정확하게 파악해 신고하기는 어렵다. 신고를 받고 출동하는 사람은 관내 지리를 잘 아는 지구대 경관들이다. 10분 동안 경찰과 실랑이를 겪은 신고자는 “우리 동네 경찰에게 내 안전을 맡기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자신이 위험에 처했을 때, 운 좋게 누군가 신고를 한다 해도 주소를 정확히 말하지 않으면 신고자에게 위치만 묻다가 시간이 다 갈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112에 신고된 모든 사건의 가해자를 경찰이 검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신고한 시민에게 주소만 캐묻다가 짜증을 내는 것이 ‘4대악 척결’을 외치며 국민 안전을 보호한다는 경찰이 취할 태도인지 의문스럽다.

김수연 사회부 기자 sykim@donga.com
#경찰#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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