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장기우]반칙운전이 부른 ‘스쿨존 비극’ 언제까지

  • Array
  • 입력 2013년 5월 1일 03시 00분


코멘트
장기우 사회부 기자
장기우 사회부 기자
“승용차 밑에 쓰러져 있는 아이의 다리를 제 손으로 잡고 끌어냈죠. 품안에 안았는데 얼굴이 피투성이가 된 채 힘겹게 ‘할머니’라고 한마디하더니, 그 어린 것이….”

4월 28일 낮 12시 25분경 충북 청주시 흥덕구 분평동의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권모 씨(30·여)가 운전하던 승용차에 치여 숨진 이혜원 양(3) 외할머니(53)의 말이다. “과자를 사달라”는 외손녀 손을 잡고 슈퍼마켓에 들렀던 할머니는 몇 발 앞서 길을 건너던 혜원이의 참변을 지켜봐야 했다.

사고가 발생한 분평동 일대는 분평초 남평초 원평초 등 초등학교 세 곳이 몰려 있는 스쿨존 지역이다. 차량은 시속 30km 이하로 서행해야 하고 운전자가 항상 시야를 확보할 수 있도록 주차는 물론이고 정차도 금지돼 있다. 하지만 이 일대는 불법 주정차가 극성을 부리는 곳이다. 사고 순간에도 도로변에는 불법 주정차 차량이 적지 않았다. 운전자가 이 양을 발견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기자가 사고 당일 오후 늦게 찾았을 때도 일반 승용차와 노점상 차량이 빼곡히 주차돼 있었다. 인도에도 상점에서 내놓은 상품 박스 더미와 간판이 즐비했다.

겉으로는 법에 따라 붉은색으로 칠해진 스쿨존일 뿐 도로 주변으로 불법이 판치다 보니 과거에도 사고가 적지 않았다. 이 양이 숨진 현장 부근에서는 2009년 10월 12세 어린이가 승용차에 들이받힌 사고가 났다. 또 사고 지점에서 360m가량 떨어진 남평초 정문 앞은 2009∼2011년 크고 작은 사고 4건이 났던 ‘사고 다발 스쿨존’으로 분류돼 있다.

길가에 세워진 차량들 때문에 아이들은 길을 건널 때 차가 오는지를 제대로 확인하기 어렵다. 주행하는 운전자도 주정차된 차량들 사이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아이를 제때 발견하지 못하기 십상이다. 스쿨존의 불법 주정차라는 고질적 원인 때문에 어린이들이 쓰러져 가는데도 아이 잃은 부모만 원통함에 흐느낄 뿐, 대책은 보이지 않는다.

스쿨존에서 적발된 교통법규 위반에는 일반 도로의 두 배를 적용한다는 수준의 정부 대책으로는 어린이 안전을 지키지 못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올해 들어서만 창원 청주에서 한 달 간격으로 어린이 통학차량에 아이들이 치여 숨졌고 이번에는 어린이를 보호한다는 스쿨존에서 또 참변을 당했다.

어린이날이 들어있는 5월이 시작됐다. 하지만 통학차량도, 스쿨존도 어린이를 지켜주지 못하는 현장을 계속 지켜보면서 이달에도 어디에선가 이런 끔찍한 사고를 겪고 피눈물을 흘리는 부모 소식을 듣게 될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청주에서

장기우 사회부 기자 straw825@donga.com
#스쿨존#반칙운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