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석호]한미 정상회담 조율할 대사가 이임인사 받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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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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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의 한국대사관 직원들은 전날 서울에서 공개된 대사 교체 소식에 하루 종일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역대 새 정권이 출범 초기에 주요국 대사를 바꾸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최영진 주미대사는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정상회담을 치른 뒤 교체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신임 안호영 대사가 상대국의 동의 절차인 아그레망을 받기도 전에 내정 사실이 공개되는 외교적 결례까지 발생한 상태여서 외교관들은 더욱 곤혹스러워했다. 한국 정부의 아그레망 신청으로 미국 핵심 당국자들은 최 대사 교체를 알겠지만 이것이 언론을 통해 모든 미국인에게 공개된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최 대사는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5월 초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다양한 미국 측 파트너들과의 접촉이 예정돼 있다. 교체가 공론화되면서 정상회담 협조를 구하러 간 최 대사가 오히려 미국의 이 사람 저 사람에게서 이임 인사를 받아야 하는, 골프 속어로 ‘핸디가 빠지는(힘이 빠지는)’ 상황이 불가피해졌다.

안 대사가 언제쯤 부임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이미 교체가 결정된 대사가 대통령의 첫 한미 정상회담을 계속 준비하는 것도, 현지 상황에 어두운 신임 대사가 뒤늦게 뛰어드는 것도 모두 모양새가 좋지 않은 상황이다.

한미 양국은 2일(현지 시간) 워싱턴에서 열리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존 케리 국무장관의 회담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준비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북한이 연일 호전적인 도발 위협을 늘어놓는 가운데 한미 양국 정상이 만나 60주년을 맞는 동맹의 굳건함과 강력한 대북 대응 의지를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정상회담의 상징적인 의미는 충분하다.

하지만 콘텐츠와 의전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미국 측의 양해를 구하고 조율해야 할 의제가 한둘이 아닌 상황에 갑작스러운 대사 교체와 외교 관례를 어긴 사전 공개로 정상회담 추진이 차질을 빚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박 대통령이 미 상·하원 합동연설을 통해 북한과 세계에 메시지를 던지는 모양새에 대해 미국 의회는 아직 답이 없다. 동맹 현안인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문제와 전문직 비자(E-3) 쿼터 확보 문제도 정상회담에서 의미 있는 결론이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시기와 형식이 적절하지 않은 ‘지도부 교체’까지 겹쳐 주미 한국대사관 직원들에게 4월이 ‘잔인한 달’이 될 것 같다. 하지만 한미 정상이 풀어야 할 현안이 어느 때보다도 중차대하고 난관이 예상되는 만큼 신구 대사를 포함한 주미 대사관 직원들은 사전 준비에 한 치의 소홀함도 없어야 한다.

신석호 워싱턴 특파원 kyle@donga.com
#기자의 눈#한미 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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