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강격석]‘의혹 백화점’ 공직후보의 당당함… 멍드는 사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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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다보면 성폭력이나 강도 전과 정도가 있지 않으면 장관 되는 데 별문제 없다는 말이 나오겠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저녁식사를 하러 찾은 한 식당의 종업원이 장관 후보자들의 인사검증 과정에서 터져 나오는 의혹에 대한 뉴스를 보면서 한탄을 내뱉고 있었다. 국무총리를 비롯한 18명의 국무위원 후보자에 대한 언론의 검증과정에서 셀 수 없는 의혹이 터져 나오고 있는데도 당사자나 정치권은 꿈쩍하지 않는 모습에 민심은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박사학위 논문 표절을 비롯해 세금 탈루, 편법 증여, 부동산 투기 등 예전 같으면 장관들의 결정적인 낙마 사유가 됐을 문제들이 박근혜 정부 구성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일’ 정도로 치부되고 있다. 위장전입이나 전관예우는 명함도 못 내밀 지경이다.

야당에서 ‘비리와 의혹의 백화점’이라고 비판한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여론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정면 돌파’ 의지를 다지고 있다. 과거 정부에서 이런 의혹이 터져 나왔다면 벌써 자진사퇴했을 일이다. 비리 전력이 있는 무기중개상을 위해 일한 사람이 국방부 장관이 돼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김 후보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묻고 싶다.

과거 김대중 정부에서 위장전입으로 낙마한 장대환 국무총리 후보자나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총리 임명동의안이 부결된 장상 후보자 입장에서는 억울해서 땅을 칠 노릇이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2010년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문제 등으로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가 자진사퇴하지 않았나.

복잡한 사안을 같은 잣대로 볼 수는 없지만 박근혜 정부를 이끌어갈 국무위원 후보자들은 과거 어떤 정부 때보다 흠결이 많다는 것이 검증 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다. 민심이 악화되고 있지만 후보자나 지명권자 모두 요지부동이다.

결국 청문과정이 마무리되고 국회 임명동의가 필요하지 않은 후보자에 대해 지명권자의 의지대로 인사가 마무리될 경우 대한민국 공직 후보자의 도덕성과 관련한 기준은 분명 한 단계 이상 후퇴하게 될 것이다. ‘어느 정도의 비리는 통과될 수 있다’는 면죄부를 주게 될 것이다. 공직을 꿈꾸는 사람들이 비리나 부도덕에 더더욱 둔감해질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잘못에 둔감해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떤가.

역치(8値)는 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을 뜻한다. 짠맛에 익숙해지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짠맛에 둔감해지는 것이다. 고위 공직자에 대한 윤리 기준이 느슨해지고 비리에 둔감해질수록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길 또한 멀어지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강경석 사회부 기자 coolup@donga.com
#의혹 백화점#강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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