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성규]유족 恨 덜어주는 것도 사법부 역할인데…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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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성토장된 서울고법 국감

김성규 사회부 기자
김성규 사회부 기자
“죽는 거보다 어려운 게 뭔지 아세요? 용서하는 거예요. 용서하는 데는 너무 오랜 고통의 시간이 걸리거든요….”

2009년 개봉된 ‘용서는 없다’는 성폭행을 당해 죽은 누나에 대한 복수를 그린 영화다. 윤간을 당하고도 매수된 법의학자(설경구 역)의 위증 탓에 법정에서 화간(和姦)으로 결론나자 동생(류승범 역)은 치밀한 복수를 계획한다. 그리고 그는 십여 년간에 걸쳐 복수를 한 뒤에야 비로소 ‘용서하지 못하는 고통’에서 벗어난다.

범죄 피해로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족의 고통은 타인이 가늠하기 어렵다. 가해자가 죗값을 다 치를 때까지 발 뻗고 살 수 없는 게 유족들에게 주어진 운명이다.

4월 경기 수원에서 20대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무참하게 조각낸 조선족 오원춘(42)에 대한 항소심 결심공판 때 검찰은 “피해자의 언니는 ‘내가 동생을 수원에서 살게 했다’면서 아직도 자책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다”며 사형을 구형했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 형사5부(부장판사 김기정)는 18일 오원춘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경남 창원지법 통영지원도 한아름 양(10)을 성폭행하려다 목 졸라 살해한 김점덕(45)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다음 날인 19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는 판결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민주통합당 박지원 의원(원내대표)은 “오원춘에 대한 무기징역 선고 때문에 국민여론이 들끓고 있다”고 법원을 비판했다. 새누리당 노철래 의원은 “법원 국감을 간다니까 지인이 ‘흉악범뿐만 아니라 법원도 사회에서 격리시켜야 한다’고 하더라”며 “사법부가 국민의 법 감정과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다”고 질타했다. 김진권 서울고법원장은 “각 재판부의 판단이 옳은지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다만 앞으로 피해자의 고통도 잘 살펴서 형량을 정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만 반복했다.

오원춘이 시신을 수백 조각낸 반문명적인 행위는 사형이 가능한 잔혹한 범죄다. 유족들이 “얼마나 더 끔찍해야 사형을 선고하겠느냐”고 울부짖는 것도 그런 이유다.

교화와 마찬가지로 응보도 법의 중요한 역할이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주는 것이 정의’라고 했다. 유족의 한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대법원은 양형은 조정하지 않기 때문에 무기징역형은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유족으로선 오원춘이 죗값을 다 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고통 속에 여생을 보낼 수밖에 없다.

사법부는 최근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 다양한 행사를 여는 등 어느 때보다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과 법원이 갖고 있는 ‘상식의 괴리’를 그대로 드러내는 판결이 계속된다면 소통은 여전히 ‘먼 나라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김성규 사회부 기자 sungg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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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여성 살해#오원춘#무기징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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