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탄핵의 괴로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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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은 자신이 죽은 뒤 첫째 아들 양녕대군이 한성을 출입하지 못하게 하라고 유언했다. 혹시 양녕이 동생인 세종의 왕위를 흔들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세종 10년(1428년)에 양녕이 도성에 들어온 것도 모자라 한 여종과 몰래 정을 통하다 들통 났다. 김종서 등 사헌부 관리들은 세종에게 양녕을 탄핵하라고 15차례 넘게 요청했다. 하지만 세종은 김종서를 좌천시키면서까지 양녕을 두둔했다. 봐주지 않으면 “전하와 영원히 이별입니다”라고 뻗대는 양녕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 사이트에서 ‘탄핵’을 입력하면 한문 기준으로 2904건이 검색된다. 조선시대에는 탄핵이 관리의 죄를 조사해 임금에게 알린다는 뜻으로 쓰였다.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3사(三司)가 나서 알리면 임금이 단죄하는 식이었다. 탄핵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오직 임금 한 명뿐이었다. 영어 ‘Impeachment’는 14세기 말 프랑스어 ‘Emp^echment’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잘못이 있는 공직자를 사법 처리한다는 뜻이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은 물론이고 국무총리 국무위원 등 고위 공직자의 탄핵 소추를 국회가 의결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어제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선고에서 안창호 헌법재판관이 “탄핵 심판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고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문제”라는 보충의견을 냈다. 탄핵 찬반으로 갈라진 사회 분열을 걱정해 각별히 지적한 듯하다. 탄핵은 심판 대상자뿐만 아니라 재판관들에게도 심신을 짓누르는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조선시대에도 간관(諫官)은 처벌을 각오하고 탄핵을 요구해야 할 때가 적지 않았다.

▷조선의 체제가 채 자리 잡지 않았던 정종 1년(1399년)에 상소가 올라왔다. 탄핵을 요구한 간관을 왕이 오히려 벌주려 하자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불법을 탄핵하는 것이 하는 일인데 이를 견책한다면 충성하고 올곧은 선비가 입을 다물까 두렵다고 했다. 탄핵이 일어나는 사회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하지만 법에 따른 탄핵으로 요동치는 사회도 건강하지는 않다.

이진 논설위원 leej@donga.com
#조선왕조실록 사이트#탄핵#헌법재판소#탄핵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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