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反문명적인 문명고 겁박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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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뛰어난 논객 크리스토퍼 히친스(1949∼2011)는 대중에게 아부하지 않는 것을 좌우명으로 삼았다. 저서 ‘자비를 팔다’에선 심지어 세계인이 추앙하는 테레사 수녀에게 딴죽을 걸었다. 1981년 아이티에 간 테레사 수녀는 독재자 뒤발리에한테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기부금을 낸 사기범이 법정에 섰을 때는 관용을 요청했으나 피해자들에게 돈을 돌려주라는 요청엔 묵묵부답이었다.

▷히친스는 2001년 테레사 수녀의 시성에 대한 찬반 의견 청취 과정에서 이 책을 토대로 로마 교황청에 반대 근거를 제시했다. 이른바 ‘악마의 대변인’ 역할이다. 이는 다수 의견에 휩쓸리지 않기 위한 교황청의 오랜 전통이다. 다원주의를 신봉한 히친스가 만약 이 땅에서 태어났다면 일찌감치 ‘절필’을 선언했으리라.

▷우리 사회에는 생각이 다른 편을 비난하고 겁박하는 일이 다반사다. 전국 5847개 중고교 가운데 유일하게 국정 역사 교과서 연구학교로 지정된 경북 경산시 문명고를 둘러싼 충돌이 그렇다. 합법적 절차에 따라 연구학교를 신청했지만 반대 세력의 도 넘은 겁박에 입학식도 파행으로 끝났다. 전교조 등에서 교장실로 찾아와 거칠게 항의하는가 하면 ‘연구학교 지정 철회 대책위’는 촛불집회를 열고 있다. 학교 측은 담당교사가 국정 교과서로는 수업을 못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기간제 교사를 모집 중이다. 같은 재단의 문명중도 국정 교과서를 보조교재로 신청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어린 중학생에게까지 불똥이 튈까 걱정이다.

▷국정 교과서는 역사 교육의 퇴보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비판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다만 ‘나는 절대적으로 옳고 너는 틀렸다’는 독선에 사로잡혀 다양성을 깡그리 짓밟는 방식이 문제다. 적어도 교육자라면 존 스튜어트 밀의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인류가 동일한 의견이고, 그 한 사람만이 반대 의견을 갖는다고 해도, 인류에게는 그 한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할 권리가 없다.” 민주적 절차와 다른 생각을 존중하지 않는 교육 현장에서 우리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배울지 두렵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크리스토퍼 히친스#악마의 대변인#국정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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