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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진]은퇴사의 美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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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이진]은퇴사의 美學

이진 논설위원 입력 2017-03-07 03:00수정 2017-03-0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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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2005년 작고한 이형기 시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낙화’의 첫머리다. 청년 시절 시 전문은 모른 채 이 구절만 주워듣고 종종 읊조렸던 기억이 있다. ‘떠날 때가 되면 주저 없이 돌아서겠다’는 다짐은 혈기 왕성할 땐 누구나 했을 것이다. 나이 먹으며 집착과 후회가 늘어나다 보면 제때 멋있게 떠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노무현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이었던 강금실 전 장관은 이임식에서 “진짜 하고 싶은 말은 못 하고 떠나는 게 이별”이라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장차관 같은 고위 공직자들은 처음에 마음먹은 대로 일을 마무리 짓고 떠나기가 쉽지 않다. 미련이 없을 수 없다. 이임사에서 그 일단(一端)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저 성실하고 괜찮았던 사람으로 기억해 준다면 감사하겠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보좌했던 김황식 전 국무총리가 남긴 이임사 한 대목이다. 김 전 총리의 담백한 작별사는 원망도, 주문도 없어 역설적으로 더 울림이 있었다.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가 4일 은퇴 기자회견에서 “은은하지만 단단한 사람이, 화려하지 않아도 꽉 찬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20대 초반에 이렇게 멋진 은퇴사를 한다는 사실이 놀랍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먹고 싶은 것도, 놀고 싶은 것도 이 악물고 참아가며 스스로를 극한까지 밀어붙였던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경지라는 생각이 든다. 성숙함은 나이가 많고 적음의 문제는 아니다.

▷강직함을 자랑하던 심재륜 대구고검장은 1999년 법조비리 수사를 못 받겠다며 초유의 항명 파동을 일으켰다가 쫓겨났다. 이때 “가식의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고 한 이임사가 회자됐다. 그는 법정 다툼 끝에 2년 만에 복직해 부산고검장으로 잠깐 일하다 물러났다. 이때에는 “검란(檢亂)은 인사권자인 정부 최고책임자의 책임이 가장 크다”며 김대중 대통령을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이임사나 은퇴사에는 말하는 이의 성품이 묻어난다. 은퇴사는 그 이후 당사자의 말과 행동으로 완성된다.

이진 논설위원 leej@donga.com
#손연재#은퇴#심재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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