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삼겹살이 상추와 만날 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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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년간 나라를 다스렸던 ‘조선의 최장수 왕’ 영조. 그는 왕세제 시절 이복형 경종의 입맛을 돋운다며 게장과 생감을 함께 수라상에 올렸다. 5일 뒤 경종은 심한 복통과 구토 설사에 시달리다 숨을 거둔다. 왕위에 오른 지 고작 4년 2개월 만이었다. ‘경종 독살설’로 전해지는 내용이다. 영조는 31년이 흐른 뒤 문제의 수라상은 자신과는 관계가 없다고 실록에 남기게 할 정도로 억울해했다. 그래도 게장과 감은 같이 먹으면 복통과 설사를 일으키는 상극(相剋)이다.

▷된장과 부추, 돼지고기와 새우젓, 간과 우유 등은 함께 요리하거나 먹으면 좋은 대표적인 음식들이다. 흔히 궁합(宮合)이 맞는 음식이라고 한다. 궁합은 원래 명리학에 나온다. 태어난 연월일시의 사주(四柱)에 띠와 음양을 반영해 남녀 사이가 조화로울지 판단한다. 역술인이 내미는 궁합 풀이가 불길하면 마음 한구석이 켕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심리다. 이제 궁합은 부모와 자녀 간의 관계에까지 적용될 정도다.

▷양파가 고기를 구울 때 나오는 1군 발암물질인 벤조피렌의 독성을 크게 줄인다는 실험 결과를 그제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공개했다. 상추와 마늘도 독성 감소 효과가 작지 않았다. 벤조피렌이 몸속에 들어와 만들어 내는 발암성분 억제 효과는 상추가 가장 뛰어났고 홍차 양파 셀러리 순으로 많았다. 식당 종업원이 가져다주는 대로 별생각 없이 먹어왔던 ‘음식 파트너’가 상보(相補) 기능을 한다는 과학적 분석 결과가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결혼을 뜻하는 프랑스어 ‘마리아주(mariage)’. 와인과 음식의 궁합을 가리키기도 한다. 생선에는 화이트와인, 고기에는 레드와인을 곁들이면 분위기는 물론이고 몸에도 좋다. 레드와인은 지방이 분해될 때 나오는 유독물질을 억제한다. 토마토와 브로콜리를 함께 섭취하면 각각의 항암효과가 더 높아진다는 식의 조합을 찾는 연구도 꾸준하다. 일상에서 최고의 음식 배합을 따지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머리만 아프다. 비결은 간단하다. 선조들이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전해준 밥상 음식을 골고루 먹는 것이다.

이진 논설위원 leej@donga.com
#영조#궁합#삼겹살#상추#마리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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