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능력 있는 보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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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혁명 초기 입법기관이던 국민공회에서 지롱드파는 온건공화정을, 몽테뉴파는 급진공화정을 주창했다. 지롱드파가 공회의 오른쪽에, 몽테뉴파가 왼쪽에 앉으면서 우익, 좌익 이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몽테뉴파는 막시밀리앵 로베스피에르가 단두대를 앞세운 공포정치를 실시하다 결국 몰락한다. 지롱드파와 몽테뉴파는 느슨한 정치 모임인 자코뱅 클럽에 함께 있다가 갈라섰다. 입헌군주정을 요구한 푀양파도 원래 자코뱅 클럽에 속해 있다가 먼저 떨어져 나왔다. 자코뱅 클럽은 정파의 모체인 셈이다.

 ▷우익에는 보수가, 좌익에는 진보라는 단어가 마치 쌍둥이처럼 붙어 다닌다. 보수우파는 시장, 자유, 경쟁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긴다. 같은 진영에서 이 중 어느 하나라도 훼손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보수우파의 울타리 밖으로 몰아낸다. 우리 정치사에서는 이승만 정부 이후 줄곧 우파의 힘이 압도적이었고 레드 콤플렉스까지 겹쳐 보수우파에 다른 색깔의 정파가 스며드는 일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서울 올림픽 개막을 코앞에 두고 김용갑 총무처 장관은 좌경세력에 강경대처, 체제수호를 위한 중간평가나 국민투표를 주장했다. 때마침 나온 ‘이 땅의 우익은 죽었는가’라는 글을 정부 부처들이 배포해 ‘우익 궐기론’까지 거론됐다. 2년 뒤 3당 합당으로 민자당이 출범하면서 우파 위기론은 가라앉는 듯했다. 민자당은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으로 계속 간판을 바꿔 달았지만 구성원들은 ‘그 밥에 그 나물’로 별로 바뀐 것이 없다.

 ▷개혁보수신당의 유승민 의원은 “안보는 정통 보수를 견지하되 경제·노동·복지는 개혁적으로 간다”고 밝혔다. 유 의원은 작년에 사회적경제기본법을 대표 발의해 보수우파로부터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유 의원 측은 이들을 양극화 같은 세상의 질적 변화를 보지 못하는 ‘기득권 보수’라고 맞받아쳤다. 이재명 성남시장도 스스로를 보수라고 주장하는 판이니 이번 기회에 보수가 새롭게 정리됐으면 좋겠다. 정치적 속셈으로 ‘진짜 보수’니 ‘가짜 보수’니 손가락질하기보다 현실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맞춤 해결책을 제시해야 능력 있는 보수다.
 
이진 논설위원 leej@donga.com
#프랑스 혁명#지롱드파#김용갑#개혁보수신당#유승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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