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주름 없는 노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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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4월 인도 북부 하리아나 주에 사는 70대 할머니가 결혼 46년 만에 첫 아들을 낳았다. 초고령 산모는 출생신고서도 없어 정확한 나이를 모르는데 남편(79)보다 대여섯 살 적은 것으로 추정된다. 손주 볼 나이에 몸무게 2kg의 갓난아기를 품에 안은 엄마는 “신이 나의 기도를 들어주셨다”며 기뻐했다.

▷알고 보면 눈부시게 발전한 의술의 기적이다. 영국 가디언지에 따르면 부부는 기증받은 난자로 불임클리닉에서 2년간 체외수정 시술 끝에 출산했다. 팔순을 앞둔 노부부가 자식을 제대로 기를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하지만 주름진 초보 엄마아빠는 느긋하다. “부모 죽으면 아기는 어떡할 거냐고 말하지만 우리는 신을 믿는다. 전능하신 신이 모든 걸 돌봐주실 거다.” 자기 유전자를 물려줘 대를 잇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가 된다. 그러나 과학의 힘으로 나이를 거스르는 무모한 인간의 생떼를 과연 좋게만 봐줄 수 있을까.

▷70대 할머니가 아기를 낳듯이, 얼굴의 주름을 없애 영원한 젊음을 만끽할 시대도 성큼 다가왔다. 최근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MIT)와 하버드대 공동연구팀은 주름 펴주는 크림을 개발해 네이처에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크림을 바르면 투명하고 얇은 막이 형성되면서 24시간 동안 피부가 당겨진다. 20대 초반부터 보톡스를 맞는 시대에 더 획기적인 발명품이 나온 것이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의 최종 검증이 남아 있지만 ‘주름 개선 마법크림’이 출시되면 인기몰이를 할 것이 틀림없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남경희로(覽鏡喜老·거울 보고 늙음을 기뻐함)’의 한 대목이다. ‘늙지 않았더라면 요절하였을 터/요절하지 않았으니 늙은 것을/살아서 늙는 게 요절보다 나은 것이라는/이 이치는 의심할 나위 없다네.’ 소설 ‘은교’에선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이,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란 절절한 대사가 노인들의 폐부를 찌른다. 젊음이 벼슬 아니듯, 백발도 치부는 아닐진대…. 주름 없이 팽팽한 얼굴의 늙지 않는 노인들로 가득한 미래의 세상, 왠지 으스스한 공포 영화를 보는 기분이 들 것만 같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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