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아재 개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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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영화 ‘아저씨’는 아내를 잃고 뒷골목 전당포를 꾸려가는 차태식이 주인공이다. 세상과 단절된 그를 다시 불러낸 건 동네 여자아이 소미의 실종이었다. 태식은 종종 전당포에 들러 자신을 미소 짓게 하던 소미를 찾기 위해 전직 특수부대 요원의 실력으로 장기매매 조직과 맞서 싸운다. 628만 명이 관람해 그해 최고 흥행작이 된 덕분에 태식 역을 맡았던 원빈은 대종영화상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빛나는 외모 때문에 아저씨보다는 잘생긴 총각 느낌이 강했다.

▷아저씨들은 겉모습부터 표가 난다. 열에 여덟아홉은 배만 불룩 나온 올챙이 체형이다. 오후쯤 되면 허리춤의 셔츠가 바지 밖으로 비어져 나와 있다. 안경이라도 썼다면 어느 한쪽으로 삐뚜름하게 기울어져 있기 십상이다. 겉이 이러니 생각은 얼마나 시대에 뒤처져 있겠는가. 어딘가 나사가 헐거워져 있고 후줄근한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가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아저씨다. 좀 낮춰 말해 ‘아재’다.

▷‘무가 눈물을 흘리면? 무뚝뚝.’ ‘송해가 씻고 오면? 뽀송뽀송해.’ ‘고등학생이 제일 싫어하는 나무는? 야자나무.’ ‘누룽지를 영어로 하면? 바비(밥이) 브라운.’ 요즘 ‘아재 개그’ 몇 토막이다. 촌철살인의 맛은 없고 말장난 아니면 객쩍은 소리가 대부분이다. 작년에 MBC의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나온 오세득 셰프가 이런 말을 반복하면서 차츰 퍼져 지금은 신동엽 박영진 같은 개그맨들까지 아재 개그를 연발한다.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도 “자꾸 (야권)연대, 연대 하면 고대 분들 섭섭해하신다”라고 끼어들었다.

▷아재 개그는 듣는 사람의 역할이 꽤나 중요하다. 고깃집 회식 도중 부장이 “회식이 아니라 고기식이네”라고 할 때 맞장구를 쳐주면 화기애애해질 수 있다. 중년 세대와 호흡을 같이한다는 공감도 생겨난다. 젊은 부원들과 거리를 좁히려는 부장의 안간힘을 ‘노잼’(재미없음)이라고 외면하면 공기가 금세 싸∼해진다. 어설픈 개그를 꺼내는 아재가 “니들이 ○○을 알아?”라며 호통치는 할배보다 훨∼ 낫다. 아재들을 위한 변명이다.

이진 논설위원 leej@donga.com
#아저씨#아재#아재 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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