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부모 집 상속받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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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택자 자녀가 10년 동안 부모님 집에 들어가 함께 살았다고 가정해 보자. 이 주택을 상속받을 때 집값이 5억 원이면 대략 5000만 원을 세금으로 내야 하지만 내년부터는 상속세를 한 푼도 물리지 않는 방안이 추진된다. 부모와 동거한 주택 가격이 5억 원을 넘을 경우 5억 원까지만 공제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의 상속세법 개정안에 잠정 합의했다. 세수 감소 효과는 작은 반면 효도 장려, 가족 해체 방지에 도움이 된다는 데 모처럼 여야 의견이 일치했다. 세간의 반응은 “참신하다” “나이 먹어서까지 무주택자로 노부모에게 얹혀살란 말인가” 등으로 엇갈린다. 정치권의 ‘친절한 배려’에 혹해 집도 안 사고 부모 모시고 살겠다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진 몰라도, 부모 부양을 조건으로 세금을 깎아준다는 발상이 나올 만큼 3대가 한 지붕 밑에 사는 대가족이 점점 드물어지고 있다.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사회로 진입한 일본의 경우 생전 증여를 권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소비 성향이 높은 젊은 층은 쓰고 싶어도 여윳돈이 없다. 미래가 불안한 고령자들은 돈을 쥐고도 쓰지 않는다. 결국 일본 정부가 소비 활성화를 위해 ‘죽기 전에 자산을 물려주라’며 증여 유도에 나서게 됐다. 요즘은 조부모가 손주에게 직접 증여하는 ‘세대 건너뛰기 재테크’도 확산되고 있다. 젊은 세대가 윗세대 도움 없이 자산을 모으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세상이다.

▷한국 부모들은 자녀에게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자금력 있는 부모는 결혼하는 자녀에게 억대 아파트를 사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보통 부모들은 자녀 양육과 결혼 비용 마련에도 허리가 휜다. 어제 한국개발연구원이 발표한 ‘고령층 가계부채의 구조적 취약성’에 따르면 60대 이상의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61%로 전체 평균 128%보다 훨씬 과중하고 상환 여력도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사회에 상속세로 고민하는 사람보다 상속세를 고민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도 빈부격차의 민낯을 보여준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상속세#고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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