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데이트 폭력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5일 03시 00분


코멘트
작년 5월 대구에서 20대 남성이 중년 부부를 살해했다. 범인은 딸의 전 남자친구였는데 발단은 연인 사이의 폭력에서 비롯됐다. 사귀던 남자에게 딸이 얻어맞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부부는 남자 쪽 부모를 만나 “둘이 만나지 못하게 해달라”고 요구하자 앙심을 품은 것이다. ‘데이트 폭력’이 끔찍한 살인사건으로 비화한 사례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데이트 폭력’이 뜨거운 화두다. 이른바 ‘진보논객’이 애인에게 폭력을 휘두른 사실이 잇따라 드러났다. ‘뉴라이트 사용후기’를 펴낸 한윤형 씨의 전 여자친구 A 씨는 19일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2008∼2012년 지속적 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한 씨는 해명성 사과를 내놨으나 비난이 쏟아지자 다시 사과하고 절필 선언을 했다. 뒤이어 또 다른 여성 B 씨가 “A 씨의 용기에 힘입어 저도 폭로한다”며 입을 열었다. 그는 일베의 행태를 파헤친 책 ‘일베의 사상’을 쓴 박가분(본명 박원익) 씨를 가해자로 지목했다. 박 씨는 혐의를 부인했다.

▷데이트 폭력은 신체 정신 언어의 폭력을 아우른다. 연인 사이 다툼으로 가볍게 넘겨선 안 될 이유가 있다. 가해자가 철석같이 다짐해도 폭력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는다. 한 야당 의원이 어제 공개한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애인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폭행이나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는 3만6362명, 목숨을 잃은 사람이 290명에 이른다.

▷“나 팼던 구 남친 여전히 진보 필자연하며 행복하게 잘 사시는…”(A 씨) “데이트 폭력을 휘두르며 성 차에서 오는 권력을 남용하는 인간이 공적인 영역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활동하고 발언하는 모습들이 이 판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믿기 때문”(B 씨) 진보논객의 가면 아래 감춰진 위선을 벗겨내 다시 자신 같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얘기였다. 한 씨와 박 씨가 소속된 노동당은 “당의 가치와 기준에 의거한 실효성 있는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입으로는 페미니즘을 앞세우며 뒤로는 여자친구를 괴롭히는 파렴치한 행태를 진보 진영 스스로 공론의 장으로 끌어낼지 주목된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데이트#폭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