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녕]대통령과 여당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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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MB) 대통령 집권 3년 차인 2010년 6월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자 박근혜 의원이 직접 반대 토론에 나섰다. “그럴 필요까지 있느냐”는 여당 중진 의원의 만류도 소용없었다. “정치가 미래로 가려면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표결 결과는 찬성 105 대 반대 164. 사실상 MB의 레임덕에 불을 댕긴 순간이었다. 당시 박 의원은 여당 지도부를 능가하는 ‘무관의 실세’이자 여당 내 강력한 야당이었다.

▷연말정산 논란이 뜨겁던 20일,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이 당시 이완구 원내대표에게 전화해 “정부와 붙을 거냐”고 물었다. 월급쟁이들의 분노를 무마하자면 정부 방침을 뒤집어야 한다. 그러자면 집권 3년 차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모양새가 되기에 그럴 용의가 있느냐고 떠본 것이다. 다음 날 이 원내대표와 김무성 대표까지 3명이 의기투합해 ‘소급 환급’을 밀어붙였다. 그 과정에서 누구도 박 대통령을 입에 올리진 않았다. MB 시절 박 대통령과 비교하면 참으로 ‘배려 깊은’ 여당 지도부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로 떨어진 것은 위험 신호다. 새누리당 지지율(41%)과 더 격차가 벌어진 것도 심각하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여당이 대통령 덕을 보려고 하기보다 부담스럽게 여기게 된다. 차별화에 나선다. 당청 관계가 삐걱댈 수밖에 없다. 대통령의 원망이 깊어지면서 급기야 탈당까지 하게 된다. 역대 정권들이 대체로 걸어온 길이다. 노무현 정권 땐 여당 의원들이 ‘대통령의 당’을 깨고 신당 개업을 했다. 한나라당이 새누리당으로 간판을 바꾼 것도 비슷한 경로였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관계는 아직은 괜찮은 편이다. 친박의 위세가 그나마 버팀목이다. 그러나 상황이 더 나빠지면 언제 역대 정권의 전철을 밟게 될지 모른다. 박 대통령이 서둘러 여당 원내대표를 총리 후보로 끌어온 것도 그런 사태를 막으려는 고육책일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처방은 대통령 스스로 변해 예전 같은 국민의 지지를 회복하는 것이다. 여당도 방관할 때가 아니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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