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오바마의 부유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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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일(현지 시간) 신년 연두교서를 통해 상위 1% 부유층 증세를 골자로 하는 세제개편안을 제안한다. 핵심은 자본소득에 대한 세율을 기존 15%에서 최고 28%로 인상해 부자들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거둬들이는 것이다. 주식 등 유산 상속분에 대해 소득세를 더 철저히 부과하는 방안도 포함된다. 이렇게 될 경우 앞으로 10년간 총 3200억 달러(약 345조 원)의 세수 확보가 가능하다고 한다.

▷임기 2년을 남기고 오바마 대통령이 ‘부자 증세’ 카드를 꺼내든 것은 미국의 빈부 격차와 중산층 붕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가 확실한 성장세를 보이는데도 양극화는 심해지고 있다. 50년 전 제너럴모터스(GM) 근로자는 현재 화폐가치로 시간당 50달러를 벌었지만 현재 월마트 직원은 시간당 8달러를 받는다. 중산층 몰락의 분노는 재작년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가 보여주듯 상위 1% 부자를 향하고 있다.

▷자본소득과 유산상속분에 과세하겠다는 오바마 부유세는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피케티는 자본 소득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아지면 분배가 악화한다고 주장했다.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경제적 성패가 확연하게 갈리고 개천에서 용 나기가 불가능한 사회에서는 청소년이 희망을 갖기 어렵다. 피케티 교수는 이에 대한 해결 방안으로 상위 1%에 대한 글로벌 부유세 도입을 제안한다.

▷오바마의 부유세 제안에 대다수 국민이 환호하고 있지만 실제 도입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상하 양원을 장악하고 있는 공화당이 이 법안을 통과시켜 줄지 의문이다. 오바마 부유세는 기업에 과세하는 프랑스 부유세와는 성격이 다르지만 부유세가 정말 빈부 격차 해소에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어쩌면 오바마 대통령은 부유세 슬로건으로 지지층 결집 효과를 노리는 것일 수도 있다. 상위 1%에게 세금을 걷어 중산층을 지원하겠다는 미국과, 중산층 호주머니를 털어 복지를 확대하겠다는 한국의 세금 논쟁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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