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진녕]외교는 드러난 것을 감추는 기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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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은 드러나지 않은 것을 찾아내는 것이고, 외교는 드러난 것을 감추는 것이다.” “대사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도록 외국에 파견된 정직한 사람이다.” 겉과 속이 다른 외교의 속성을 표현하는 말이다. 그래서 국가 간 외교에서는 뻔히 속내가 보이는 데도 진실을 숨기거나 다른 핑계를 대는 경우가 많다. 정부의 독도 입도지원센터 건립 보류를 두고 벌어진 소동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1953년 6·25전쟁 정전협정이 체결된 뒤 미국의 닉슨 부통령이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친서를 들고 이승만 대통령을 방문한다. 친서는 이 대통령의 돌출행동을 염려해 ‘통일을 위해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고 약속해 달라’는 것이었다. 다음 날 이 대통령은 답서를 닉슨에게 건네주며 “언론이 ‘이승만이 단독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미국에 약속했다’고 보도한다면 공산당을 도와주는 게 된다. 그러나 내가 ‘한국이 단독으로 행동할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오히려 미국을 도와주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북한 공산당을 이기려면 자신이 무슨 말을 하든 진의를 알아 달라는 당부였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소련에 ‘핵전쟁 불사’까지 경고하며 전격적인 쿠바 해상 봉쇄를 감행했다. 이런 강공책이 소련의 기세를 꺾어 위기를 넘긴 것으로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케네디는 소련과 끊임없이 막후 협상을 벌였다. 동생인 법무장관 로버트 케네디를 특사로 활용해 터키와 이탈리아에 배치된 미국의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6개월 내에 철수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 대신 미국의 체면을 위해 이 사실은 비밀에 부치도록 요구했고 소련은 수락했다.

▷외교를 하다 보면 투명하게 국민에게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있을 수 있다. 국민도 어느 정도는 이런 속성을 이해해줄 필요가 있다. 다만 외교하는 사람들은 누구든 “내치(內治)는 우리를 패배시킬 수 있을 뿐이지만, 외교는 우리를 죽일 수 있다”는 케네디의 말을 깊이 새겨야 한다. 외교의 실책은 내치의 실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이라는 경고를 담고 있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외교#정전협정#쿠바 미사일 위기#케네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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