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영]TV토론 겨우 세 번 하고 뽑은 박근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3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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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사드 배치를 놓고 미중 간 힘겨루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G2가 동아시아에서 격돌하고 있는데 우리가 외교정책을 어떻게 짜야 할까요. 30초씩 드리겠습니다.”(19일 KBS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후보 합동토론에서 사회자)

“홍준표 후보께서는 청년 일자리 문제, 그리고 미국과 맞짱을 뜨겠다고 했는데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말씀해 주시죠. 30초만.”(19일 TV조선 자유한국당 대선 경선후보 토론에서 안상수 후보가 홍 후보에게)

요즘 대선 경선후보 TV토론은 대개 이런 식이다. 안보 경제 같은 복잡한 문제의 해법을 물어놓고 “짧게” “간단히” 답하라고 요구한다. 논술시험인데 단답형으로 써내라는 식이다. 고차방정식 문제에 풀이과정 생략하고 답만 적으라는 격이다. 채점하는 입장에서는 누구에게 점수를 주어야 할지 난감하다. 어느 외교안보 전문가는 “주요 후보들의 책을 읽고 TV토론도 봤는데 사드에 대한 생각이 뭔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한국 대선에서 TV토론이 도입된 건 1997년 15대 대선(후보 김대중 이회창 이인제) 때다. TV토론이 54회나 열렸고, 언론사와 각종 단체가 주관한 토론회를 포함하면 100회가 넘었다. 2002년 대선(노무현 이회창 권영길) 당시엔 27회, 2007년(이명박 정동영 권영길 이인제 문국현)엔 11회였다. 불통(不通)의 박근혜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았던 2012년 18대 대선에서는 TV토론이 역대 최소인 3회, 총 6시간 동안 진행됐다. 이는 공직선거법상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의 토론회였다.

더 큰 문제는 토론의 질이었다. 18대 대선의 TV토론 진행표를 보면 초 단위로 진행 상황을 짜놓은 방송용 큐시트를 보는 듯하다. 기조연설 각 2분, 사회자 공통 질문에 후보자 각 1분 30초 답변, 상호토론 6분…. 상호토론 공식은 이렇다. A후보 질문 1분→B후보 답변 1분 30초→A후보 질문 또는 반론 1분→B후보 답변 또는 재반론 1분 30초…. 깊이 있는 토론은커녕 ‘모범답안 읽는 학예회식 토론’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주장과 반박, 재반박이 이어지며 능력과 사람됨이 낱낱이 드러나는 토론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팀이 15∼18대 대선에서 진행된 12회의 TV토론을 분석한 결과, 사회자 질문이냐 상호토론이냐 하는 토론 형식보다는 시간을 얼마나 할애하느냐가 관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당선 가능성이 높은 두 후보자 간의 토론에서 상대적으로 내실 있는 토론이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한국방송학보 논문 ‘TV토론은 진정한 토론인가?’)

선거 기간이 짧고 당선 후 바로 일을 시작해야 하는 이번 대선에서 TV토론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TV토론이 효율적이고 실질적인 검증의 기회가 되려면 형평성을 위해 변별력을 포기했던 옛날 틀을 버리고 새로운 방식을 시도해야 한다. 토론에 나오는 참여자 수를 줄이고 시간은 늘리자. 사드면 사드, 일자리면 일자리 하나만 가지고 무한토론을 해야 누가 진짜배기인지 가려낼 수 있다.

안희정 민주당 후보는 21일 채널A ‘외부자들’에 나와 “도지사(선거) 때는 질문이 작은 시냇물의 수압이었는데 대통령에 도전하니 바닷물 같은 수압을 느낀다”고 했다. 대선 주자들은 수압이 바닷물 수준인 질문 공세에도 흔들리지 않는 맷집과 설득력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갈라진 국론을 하나로 모아 ‘거래의 기술자’인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공해(公海)인 남중국해에 구단선(九段線)을 그어 놓고 중국해라고 우기는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習近平)을 상대해낼 수 있다.

이진영 채널A 심의실장 ecolee@donga.com
#대선 경선후보 tv토론#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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