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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양종구]인간과 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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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양종구]인간과 달리기

양종구 스포츠부 차장 입력 2017-03-15 03:00수정 2017-03-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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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종구 스포츠부 차장
‘인간은 시속 200km의 자동차 안에선 전혀 위험을 느끼지 못하지만 들이나 산에서 만난 뱀을 보고는 기겁을 하고 놀란다.’ 진화심리학자들이 인간이 진화하긴 했지만 아직 원시적인 본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할 때 자주 쓰는 표현이다. 자칫 실수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시속 200km가 넘는 자동차 안에선 편안해하면서도 뱀을 보곤 생명의 위험을 느끼는 점에서 인간 본성은 아직 원시시대에 더 가깝다는 얘기다.

원시시대에 가장 큰 인간의 특징은 움직임이다. 요즘 말로 하면 운동능력이 뛰어나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맹수로부터 생명을 지키거나 사냥감을 따라잡기 위해선 달리기 능력이 중요했다. 잘 달리는 사람이 대접받고 살아남았다.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 5000m와 1만 m, 마라톤까지 제패한 ‘체코의 인간기관차’ 에밀 자토페크는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인간은 달린다’고 했다. 미국 AP통신 종군기자 출신 크리스토퍼 맥두걸도 2010년 ‘본 투 런(Born to Run)’이란 책에서 달리기를 예찬했다. 달리기는 인간의 가장 원시적인 본능이라는 것을 멕시코의 한 원시부족을 통해서 보여줬다.

최근 휴일을 맞아 모처럼 서울 한강변을 달렸다. 풀코스에 6회 도전해 5회 완주한 마스터스 마라토너로서 매주 달리고 있는데 달리기 명소 한강을 다시 느끼고 싶어 오랜만에 행주대교부터 원효대교까지 왕복 30km를 달렸다. 편의점에서 물을 사서 마시고 힘들 땐 걸으면서 약 4시간 동안 달리며 20년 넘게 마라톤 담당 기자로 일한 필자는 안타까운 현실을 실감했다. 자전거를 타거나 걷는 사람은 많았는데 달리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한 손으로 꼽을 정도의 사람만 달려 지나갔을 뿐이다.

한때 국내에서는 ‘마라톤 붐’이라고 할 만큼 달리는 사람이 많았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을 무렵인 1997년부터 마라톤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 한때 공식 마라톤대회에 참가하는 사람만 약 80만 명, 건강을 위해 달리는 사람은 400만 명 정도로 추정됐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각종 마라톤대회 참가 인원도 줄었고 수천 개이던 대회 수도 나날이 줄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자전거를 비롯해 다양한 스포츠로 전향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인간 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로 각광을 받았던 마라톤이 혼자 고통을 감내하며 지루한 싸움을 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다른 스포츠와의 경쟁에서 밀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시 마라톤의 묘미는 은근과 끈기다. 2009년 뉴욕 마라톤에 참가했을 때 400여만 명이 거리거리에서 응원하는 모습을 보고 황홀해하며 완주한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마라톤 완주는 ‘칭찬받아야 한다’며, 대회에 참가하지 않은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레이스가 종료될 때까지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완주 자체가 ‘인간 승리’였다.

다행히 19일 열리는 올 동아마라톤에는 역대 국내 대회 최다인 3만5000여 명이 참가한다. 특히 10km 참가자 1만5000여 명 중에는 20, 30대 남녀가 60%가 넘는다. 외환위기 때 마라톤을 완주하며 역경을 극복했다는 사람이 많았다. 사상 최악의 청년실업이 계속되는 가운데 구직난을 겪고 있는 젊은이들이 서울 도심을 달리며 희망을 찾는 장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역대 최다 인원 참가를 계기로 국내에서도 다시 ‘원시 본능’ 달리기 붐이 일기를 기대한다.
 
양종구 스포츠부 차장 yjongk@donga.com



#동아마라톤#달리기#마라톤 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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