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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이동영]쉬운 폐지, 어려운 보수(補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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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이동영]쉬운 폐지, 어려운 보수(補修)

이동영 정책사회부 차장 입력 2017-02-17 03:00수정 2017-02-1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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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영 정책사회부 차장
다양한 직업인을 만나 취재하다 서로 중고생 학부모라는 공통점을 발견할 때가 종종 있다. 의견이 엇갈려 서로 낯을 붉히다가도 이런 공통분모 앞에서는 같은 편에 서서 교육당국과 학교를 향해 채찍을 휘두르며 맞장구를 치게 된다. 자기 자식이 겪은 억울한 경험과 피해 사례를 쏟아낸 다음에는 쾌도난마 같은 해결책을 내놓는다.

대개 두 가지다. 과도하지만 전혀 고쳐지지 않는 사교육 문제, 난수표보다 알아보기 힘든 대학 입시 제도를 일거에 해결하는 방안이다. 간단하다. 사교육은, 크게 고민하지 말고 법으로 금지시키면 된다고들 한다. 전두환 정권 시절 과외금지 조치를 경험해본 40, 50대일수록 “못 할 게 뭐냐, 하면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복잡한 입시 역시 간단히 수능 점수로 대학 가게 하면 그대로 풀리는 사안이라고 한다. 정의의 몽둥이로 악을 두들기는 기분이지만 그런다고 이 땅의 아이들이 행복할까라는 의문이 든다. 서슬 퍼런 전두환 정권 시절에도 과외가 완전히 없어지진 않았다. 수능 점수로만 대학 가면 더더욱 사교육 시장에 불이 붙을 게 뻔하다. ‘점수의 노예’로 만들지 않기 위해 저마다 잘하는 분야를 키워주는 다양한 수시 전형을 폐지하고, 오로지 입시 공부에만 매달리게 하는 20, 30년 전 입시체제로 돌아가자는 말에 공감하기 어렵다.

이런 문제의 답은 ‘공교육의 정상화’다. 학교에서 사교육이 필요 없게 공부든 예체능이든 잘 가르치면 된다. 복잡한 입시라지만 담임교사가 담당하는 학급 학생 개개인에 맞는 전형을 찾아내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일까?

교사가 제자와 같은 해에 수능을 치르면 몇 점을 맞을지 궁금하다는 학생 학부모가 많다. 질문하면 짜증부터 내거나 인터넷 강의와 비교할 수 없는 낮은 수준의 학교 수업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지만 이 대목을 고쳐보겠다는 정치인이나 장관은 없다.

능력이 부족한 교사는 퇴출시키고 모든 교육이 학교 안에서 진행되도록 교사가 더 노력하라고 요구했다가는 교원단체를 중심으로 조직적인 반발이 나올 게 뻔하다. 정상적으로 영업하던 각종 학원의 문을 닫게 만들겠다는 과감성이면 교사에게도 충분히 요구할 법한데 남경필 경기지사는 학원만 두들기고 있다. 교사 평가 틀을 확실하게 정립하고 학원 강사가 아닌, 학교 교사가 아이를 가르치는 평범한 상식이 통용되게 하면 될 일이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라고 하면서 창의성을 키우기는커녕 여전히 암기 위주, 빠른 사칙연산에 익숙해지라고 요구하면서 이를 교육이라 부를 수 있겠나. 실상이 이런데 여러 대선 주자는 앞다퉈 교육 정책이나 당국을 폐지하겠다고 목청을 높인다. 허술한 입시 관리에 역사 교과서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당국을 보면 일견 수긍이 간다. 허나 교육이란 건 단칼에 잘라내야 새살이 쑥 돋아나는 존재가 아니다.

얽히고설킨 반개혁의 실타래를 한 올 한 올 풀어야 제 모습을 찾는 법이다. 복잡하고 어려운 수술 잘하는 명의(名醫)일수록 크게 한칼 휘두르기보다 시간이 걸리고 힘들어도 끈질기게 달라붙어 정교하게 암 덩어리만 도려내 부작용을 줄여가며 환자를 살려낸다. 손쉬운 폐지만 주장하지 말고, 어려운 길이지만 망가진 공교육을 세밀하게 고쳐보겠다는 후보를 지지하고 찍어줘야 하는 이유다. 이제 거창한 ‘폐지 공약’은 접어두고 여러 대선 주자가 힘은 좀 들더라도 지금부터 ‘교육 보수(補修)의 길’에 나섰으면 좋겠다.
 
이동영 정책사회부 차장 argus@donga.com



#4차 산업혁명#공교육의 정상화#다양한 직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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